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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만큼 여행하기2

허세에 대한 한 연구

틈틈여행 2018. 6. 19. 23:43

 2015년 9월 14일

아침 8시 의정부역에서 모이는데 모두들 약속시간 정확히 지켜주어 출발이 순조롭다.
어라??!! 그런데 누규~~??
우리의 만남 현장 발치에서 한 분 알은채 해주시는 분이 계셨다.
한북 정맥 걸으신다는데 이렇게 우연히 만나니 와락 반갑다.
인증샷은 기본이지~~잉.


선우아빠가 사주는 커피로 카페인 보충하고 운악산을 향해 출발.
두 사람 아주 신났다.
바위타는, 등짐지고 나가 야전에서 잠자는, 자전거 타는 얘기들이 씨줄, 날줄 되어 너울너울 수다가 한바탕 이어진다.
 
두 해 전에 여럿 모여 포천 쪽 운악산을 함께 했지만 둘 다 가평쪽 운악산은 처음이다.
토욜 하루종일 밖에 있었던터라 산행에 대한 부담이 컸던 것에 비해 컨디션이 좋다.
간단히 준비한 도시락 일습 두 사람에 나눠 업어주고 텅 빈 배낭 매고 오르니 그럴 밖에..^^
 
현등사 일주문 지나 오른쪽 숲길로 들어서 눈썹바위 미륵바위 만경대, 그리고 정상에 다다른다.
선우아빠가 가져온 과일을 핑계로 한참을 앉아 수다 삼매경에 빠지고 경희샘이 가져온 치즈케잌을 매개로 엄청 즐거운 휴식을 갖는다.
경희샘이 무얼 도모해볼까싶어 일단 블로그 개설을 했다는 말 끝에 15년 블로그를 해온 내가 훈수를 둔다.
"블로그는 말야, 제대로 허세를 떨면 되는거야"
무게의 부담 때문에 굶거나 아주 적은 양만 겨우 먹는 암벽등반을 하면서 너무 피폐해졌다는 경희샘.
이제 뭔가 챙겨가며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는 풍요로운 정서를 살려보겠단다.
그렇담 케잌을 그냥 먹으면 안되지잉.
진즉 그런 마음 알았으면 내가 준비 더 준비해왔을텐데..
"일단 가져온 꽃무늬 테이블보를 깔아서 세팅을 해보자구."
음식이 다 식는 한이 있어도 블로거는 사진이 우선인거에요. 나 케잌 엄청 먹고 싶지만..얼렁 사진부터 찍어요.
산에서 먹는 치즈케잌 단맛이 기분까지 호사스럽게 했다.
 
캠핑이나 팩패킹 장비 얘기가 나왔다.
"그런거는 사치하지마"
선우아빠가 샀다는 코펠에 대한 평이랄까? 생명에 직결되는 것이 아니면 사치 안한다는 경희샘은 실속파.
헬맷은 비싼걸로, 텐트는 가성비 좋은 저렴한 것, 침낭은 약간의 사치 등등.
"그래서 정보가 있어야 된다니까"
정보 많이 얻어가는 선우아빠의 아웃도어는 미니멀리즘.
난 듣도 보도 못한 브랜드들이 메뉴에 올라왔고 생전가야 한 발 들여놓을 일 없을 것 같은 아웃도어품목들이 물망에 올랐다.
어쨌거나 나는 중간중간 보급품이나 조달하는 사람을 자청했다.
 
병풍바위 앞에서 꺼냈던 헤어밴드를 정상에서 다시 꺼냈다.
블로그에서 20만원짜리 모자를 쓴 것보다 미키 헤어밴드 쓴 사진을 더 기억할거라 생각하는 경희샘.
돈 들이는 허세와 돈 안들이고 부리는 허세중 후자를 택하겠다니 맘에 쏙 든다.
선우아빠는 하나마나한 앙탈.
"그래도 써!!"
이후 계속 헤어밴드 착용, 우릴보며 저런거 하나 사야겠다는 남자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정상주로 시원한 막걸리 한 잔. 캬..좋다.
 
"자아 자...블로거는 밥상도 막 차리면 안돼. 색 맞추고 모양 맞춰 차려야지. 이런줄 알았으면 반찬 색깔 신경쓸걸"
"얼렁 사진 찍어요"
"안해 안해..나 블로그 안해"
그러면서 못이기는척 찍은 사진 어디에 쓸라고요.
허세는 잘찍은 사진 한 컷이면 충분하다는둥...
 
"블랑켓 하나 준비해야겠어요. 어느 블로그에서 보니까 잠자리에 걸쳐놨는데 좋아보였어요"
"그거..내가 준비해갈게. 내가 스코틀랜드에서 직접 사온 양모 담요야. 그것보다 허세스러울 수 없겠지?
 반드시 그러나 슬쩍 라벨이 보이게  걸쳐주는거지. 거기 체크들은 나름 이름이 다 있으니 타탄체크라고 꼭 써줘야 돼"
선우아빠의 소소한 걱정, 그런걸 아까워서 어떻게 가지고 나가냐는..
"걱정마. 두 장 있어. 아주 오래전 여행가서 사온 것이랑 울언니 출장길에 부탁해서 사온 것."
 
현등사에 길게 눕기시작한 초가을 부드럽고 맑은햇살이 비춰들어 쉼하기 참 좋았다.
보랏빛 꽃향유 너머 멀리 산봉우리들이 이뤄내는 풍경에 눈을 주다가도 가기를 포기한 백호 능선이 눈에 밟혔다.
"담번에 내가 백호능선 답사하고 데려가줄게. 오늘은 이쪽 처음이라 현등사 들린거고.."
사실 팽팽한 접전이 내 마음에 있었지만 백호능선을 포기했다. 오늘만 날인가? 발바닥이 아파왔고 무릎도 걱정되어서다.
이 두 냥반 내가 혼자 답사해보겠다니 뭐하러 그러냐, 함께 오자니 더없이 좋다.
 
"여기 봐바. 얘이름이 고마리거든. 이렇게 지천이라도 한 송이 잘 찍어서 올리면 엄청 귀한 아이가 되는거지"
우린 물봉선도 노랑 흰색 연분홍 지천인 길을 내려오면서 내려가면 제일 먼저 뭐할거야? 난 싱싱한 커피 마시고 싶어.
경희샘이 동의.
"경희샘. 산에서 원두 갈아서 마시는 기계 사. 원두 내가 준비할게.
이마트에서 한참을 만지작거린 아이템이란다.
"그런건 사치해도 돼. 꼭 사. 허세 부리기에도 좋잖아!!"
워낙 늦은 시간에 내려와서 커피 마실만한 곳은 죄다 문을 닫은 상태.
"그래..그거 꼭 사치해야겠다, 경희샘"
 
수목원길로 돌아가려는중 문득 생각난 음식점.
"여기 포스팅하기 좋게 음식나와.  블로그에 최고의 맛집인 것처럼 소개하는거야. 그럴때 어떻게 쓰는건지 알아?
  난 이 음식 좋아하지 않는데 이곳에서는 정말 입에 딱 붙게 맛있어서 아주 잘 먹었다..이런식으로"
그러면서 들어간 음식점..사실 그 식당은 맛있다.
 
커피를 마실 때도 허세샷을 찍으라는둥...
하루를 마감하고 다시 의정부역에 돌아오고 보니 12시간을 함께 했다.
"수고..아니 즐거웠습니다"
선우아빠가 먼저 내렸다.
하루 잘놀고 고생했다거나 수고 했다고 인사하는 것이 이상해서 즐거웠다고 인사하자고 했더니 기억했나보다.
정말 하루 즐거웠다.
8시간 산행중 이동시간 5시간 휴식시간 3시간쯤 될터였다.
난 이런 달팽이 속도의 산행이 좋다.
내가 얼마나 오래 숲에서 쉼을 가졌나, 어떤 꽃들을 만났나를 허세 삼는게 내 산행 스타일이다. ㅎㅎ
 
*선우아빠는 글을 쭈욱 쓰고 그담 사진 쫘악 올리는게 읽기 편하다해서 이번에 이리해보는데 내겐 어색한...
시간은 훨씬 짧게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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