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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수니 일기2

소소한 일상

틈틈여행 2014. 2. 6. 14:34

시래기를 삶았다.

이렇게 푸르고 싱싱하게 잘말린 시래기 없을거라고 자신만만해하는 울언니표 시래기.

푹푹 푸~욱...

습해지는 집안공기 창문 열어 환기 시키며 오래오래 삶아 식혔다.

퇴근후 씻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드라마를 보면서 뻑뻑해지는 뒷목은 뚜둑뚜둑 소리나게 돌려가며 껍질을 벗겼다.

시래기는 조금 남았는데 수목드라마 수요일분이 끝났다.

뭐 좀 놓친걸 보려고 다시보기 뒤적거리다 김현식 스페샬이 얻어걸렸다.

그의 삷, 그의 노래, 그의 죽음에 이르는 얘기들이 시래기 껍질과 뒤섞여 흘깃 지나가면 다시 되돌려본다.

이리 정성스레 본다한들 하룻밤 자고 나면 희미해지는게 요즘의 기억력인걸.

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식에서의 전인권은 관객들 앞에 너무 무례하다 싶을정도였는데 다시금 목소리가

정돈되고 젊은날 만큼은 아니어도 힘이 있었다. 

물론 그렇다해도 김현식의 목소리로 듣는 '내사랑 내곁에'에는 어림도 없었다.

엄인호 오태호 신촌부루스 들국화 등등..내 젊은날에 익숙하게 오르내리던 이름들이 나오고

동아기획 사장이 나오고..아, 동아기획!!

그시절 동아기획을 통해 박학기 푸른하늘 장필순 시인과촌장...수많은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접했고

나의 청춘이 그들 음악과 더불어 풍요로웠었다.

어느새 청춘이라 말하고 그 청춘을 생각하는게 아니라 추억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내사랑 내곁에'가 유난히 찡하게 들리는 밤, 시래기 껍질은 벌써 다 벗겼는데 꼼짝않고 앉아 T,V에 빠졌다.

 

 

 

아기 옷을 한 벌 샀다.

처음 만났음에도 서로 눈물바램한 사이인 그녀의 아기를 위한..

내가 좋아하는 아기옷 브랜드를 그녀도 너무 좋아해서 한참을 아기옷 얘기에 열을 올렸다.

선물이 이렇게 딱 맞아떨어질 때 선물의 가치가 급상승한다.

받는게 기쁘기만 한 것도, 주는게 더 좋은 것이라고도 딱 잘라 말할 수 없는게 선물이다.

받는 것보다 줄 때가 많은 나는 잘고른 선물로 받은것 이상으로 가슴 뛰게 기쁠 때가 많다.

내가 돌아오고 조금 후에 새옷입은 아기 사진을 보내왔다.

너무 맘에 든다고, 너무 예쁘다고...

진정 잘고른 선물은 받은이의 기쁨이 120% 표현되고 내겐 200% 기쁨이 된다.

 

 

 

잘씻어 물에 담가두었던 시래기를 한번 더 헹궈 꼭 짜서 숭숭 썰었다.

울언니표 된장을 넣어 조물조물 무치고 쌀뜨물이 없어 맹물에 밀가루를 조금 넣어 풀었다.

다시마 몇 조각, 다듬은 멸치 한 줌을 넣고 마늘도 조금...

폭폭폭폭..한참을 끓인후 어슷 썬 대파도 넣고 한소끔 더 끓였다.

끓였다기 보다 지졌다고 해야 맛이 가늠이 될 것 같다.

시래기는 지져야한다.

끓이면 국이 되고, 조린다는 건 국물이 거의 없는 요리, 뭔가 생선이라도 넣어야 할테고

볶는다면 넘 뻑뻑하고 질긴 맛이 될거다.

자작자작..국보다 적고 조림보다 넉넉한 국물.

슴슴한 간에 보들보들 맛나게 지진 시래기를 따로 한 통 담아두었다.

몸 아플 때 내 된장찌개 생각이 절로 나더라는 그녀를 위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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