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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수니 일기2

꽃고모, 야매플로리스트

틈틈여행 2017. 2. 9. 21:54

자격증이 있느냐, 포장을 배웠느냐..가끔 꽃을 묶는 중에 받는 질문이다.

"저 야매플로리스트인데요. 30년동안 꽃하고 놀면 이렇게 되요"

글쎄, 꽃카페 주인인 조카는 이런 고모가 부끄러울래나?

하지만 사실인데 뭐...

"내가 왜 당당하게 야매라고 말할수 있는줄 아니? 난 잘하잖아!!"

블로그를 쉬고 있었지만 여전히 숨쉬는 것과 잘난척을 계속하고 있다는...하하하

 

지난해 겨울 뭘 해볼까 하는 조카에게 꽃카페는 어떻겠냐고 말했고  내 말에 동의한 조카는

내 친구의 카페를 인수해 4월 5일부터  blunchi & flower cafe 를 시작했다.

나는 내 일을 계속하면서 꽃고모로 참견을 하는 참견인이 되었고 꽃을 해보라고 툭 던졌으니 

약간의 책임감으로 꽃놀이를 즐겼다.

꽃고모는 어느 신부님이 나를 부르시는 별명.

H갤러리.

사람들이 묻는다 H갤러리의 H에 대해...

"현주 할 때의 H에요"

캬캬캬 뻔뻔한 나의 답변. 사실  친구가 하던 그대로 H갤러리다.  

 

늘 꽃모가지 잘라 꽃다발 만들고 꽃바구니 꾸미던 내가 화분에 옯겨심은 꽃과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는게

정말 신기했고 그런 화분들을 보면서 그동네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감탄하고 마침내 자기들 집으로 데려갔다.

동네가 환해졌다고, 이쁜데 비싸지 않다고, 이런 카페가 있어서 행복하다고들 했다.

어버이 날, 스승의 날 즈음에 등산으로 다져진 체력 제대로 써봤다.

스무시간 깨어있으면서 꽃바구니 꽃다발을 만들었으니까..

바쁠 것 없이 그냥 즐겨 만들면 만드는대로 사람들이 가져갔다.

 

참 즐거운 시간들.

꽃을 사가기도 하지만 내게 선물도 가져왔다. 꽃 잘 썼다고...

친정 아버지께서 한봉을 하신다며 꿀을 가져오시고 마당에서 딴 감을 가져오시고 까막눈에도 정말 꽃을

잘 묶는다고 작은 선물을 가져오시고...동네분들과의 꽃수다가 즐겁다.

클래스를 원하는 분들도 많지만 내가 시간을 맞추기도 어려워 예약을 통해 직접 만들어가는 시간도 마련했다.

 

연말에는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으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여자친구가 눈을 떼지 못한다고 선뜻 구매를 하기도 하고 넘 예뻐서 보은의 선물까지 두 개를 동시 구매하시고..

많은분들이 손재주 좋다고 하셨다.

"손재주가 좋은게 아니구요 머리가 좋은거에요. 손이 할 수 있는 만큼을 머리고 생각하거든요"

 

30년 넘게 나를 위한, 주변인을 위한 선물꽃만 만들어온 야매플로리스트인 나는
질보다 양을 승부하는 겉보기만 푸짐한 상업용 꽃다발도 거부하고
꽃보다 거한 포장지로 잔뜩 허세부리는 작품성 높은 꽃다발도 지양한다.
풀어서 꽃병에 꽂을 때 서운하지 않은 양의 싱싱한 꽃, 나라면 이 값에 이걸 살까하고 고민하며 묶는

마음구조가 꽃장사일 수 없는 사람이다.

꽃만지는 즐거움으로만 꽃을 묶고 바구니를 만드는 나를 손님들이 알아봐주는게 즐거울 뿐이다.

 

"여기 꽃은 달라"

손님들이 하는 말, 크림색 무광 꽃냉장고와 그 안의 꽃들이 잘난척 좀 하긴 한다.

예쁘고 싱싱한 꽃들로 채워져야 손님들이 나를 믿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맡겨주시는 법이니까..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동생이 하는 말이지만 난 그런게 귀찮고, 그런것 없이도 알아서 해달라고 해주시니 고맙고 즐겁다.

 

요즘은 꽃의 대목인 졸업시즌.

한 손님이 그러신다. 입소문이 나서 바쁠거 같다고..
기분이 좋다.
새벽 3시나 4시에 힘겹게 일어나지만 온갖 꽃들이 가득한 꽃시장
화장실 가는 것도 귀찮고 커피가 식는 것도 잊은채 꽃 만지기에 몰두하는 시간
손님들의 꽃을 받아드는 행복한 표정
그리고 입소문..
모두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다.

 

공릉동 서울여대 후문의 H갤러리, 혹 내가 있을 때 블로그를 보고 꽃을 사러 오시는 분이라면

커피 한 잔 대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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