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만큼 여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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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만큼 여행하기2

아주 유명할..& 아주 유명한..

틈틈여행 2009. 11. 22. 01:06

그러니까..그게..아마 2월이었을게다.

티켓오픈 말이다.

하 오래 전에 예매를 해둔거라 정확하게 몇 월었는지 가물가물하다.

첼로 독주에 좋은 자리는 앞줄 6번째에서 10번째 쯤이라하니 딱 그안에서 골라 여덟번째 줄,

중앙에서 조금 빗겨 왼쪽이다.

 

먹고 사는 일로 늘 헉헉거리는 나는 내 속의 문화적 허영심을 채우는 시간만큼은

모든 것을 반박자 이상 더 늘려 아주 헐렁하고 느릿하게, 또 느긋하게 운용한다.

아침부터 무엇을 입고 갈까 고민이 많았다.

근사한 저녁을 사겠다는 멋진 동행에게 부끄러운 동행이 되서는 안될텐데...

내가 초대한 동행은 조금 유명해서 예술의 전당에 떴다하면 인사 나누는 사람이 여럿이다.

얼마전 즐거운 가격에 구입한 이중직 하프코트를 조촐하게 입고 정확한 약속시간에 도착했다.

 

이태리식당에서 맛있는 스파게티로 저녁식사를 할 때 녀석의 학교문제를 시작으로 우리 가족들,

여행, 사진, 옷과 옷태에 관한 이야기들이 스파게티와 함께 돌돌 말렸다.

..제 다리가 무릎 아래로 5cm만 더 길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지금도 충분히 멋지거든.

우린 수다를 멈추고 5cm가 아쉽긴 해도 나름 멋진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공연시간이 다가오면서 건너는 사람들이 많은 횡단보도를 걸으며 기분이 살짝 들떴다.

쿠키 한조각과 커피, 커피후에 갈증이 날까 염려하며 물 한컵을 같이 가져온 조금 유명한 음악가는

착착 붙게 편안한 매너로 음악회 직전의 내 기분을 최고조로 만든다.

 

..와~~자리가 너무 좋아요.

예약할 때 알려준 자리를 찜한 것 뿐인데 무얼...^^

VIP 존의 평균 연령은 꽤 높아 보였다.

..우리처럼 고모와 조카 팀은 없는것 같다 그치?

..맞아요.

 

미샤 마이스키 첼로 리사이틀, 피아노는 그의 딸 릴리 마이스키.

늘 귀로만 듣던 그의 연주는 듣고 보게 되다니...!!

침 넘기는 소리마저 조심해야 할 만큼 조용한 가운데 연주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페이지 터너의  손길이 거칠다 느껴질 만큼 악보 넘어가는 소리가 신경쓰였고 마이스키의

셔츠 디자인을 살피고 뱃살 관리 좀 하셔야겠넹 하면서 산만하다가 곧 그의 연주에 빠져들었다.

딸과 함께 이루어내는 하모니에 폭 빠져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미샤 마이스키의 연주하는 모습은 보드라움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 보드라움속에서 뜨겁고, 차갑고, 그사이 따뜻함도 나오고  뜀도 있고 쉼도 있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너무 폼내지 않는...힘이 쪽 빠진..아주 유명한 대가다운..

딱히 내가 느낀 것을 적어낼 수 없는 이노무 몹쓸 표현력.

어느 순간  그의 모습을 꼭 한 컷 찍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느라 힘들었다.

하얀 머리칼을 배경으로  약간 빗긴 그의 옆얼굴에서 나는 禪을 보았다.

내가 알고 있는 첼로의 음색은 아주 일차원적이었음도 알게 되었다.

특히나 라흐마니노프와 쇼스타코비치의 곡들이 연주될 때 첼로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다.

아니..솔직히 말하면 첼로를 전혀 몰랐다가 이제야 조금 알게됐다고 해야 한다.

내가 로스트로포비치와 미샤 마이스키, 장한나의 첼로 연주 차이를 알아채고 구분하고 감상하는

예민한 귀를 가지고 있지 않았어도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휴식시간에 나가다가 우리보다 많이 뒤쪽에 앉은 '이적'을 발견한 조카가 내게 확인을 하고 하는 말.

..내가 이적보다 좋은 자리에 앉아서 이공연을 보다니!!

지금은 조금 유명하지만 앞으로 아주 많이 유명해질 이 음악가가 너무 귀여워 나는 두고두고 낄낄웃었다.

..요즘 첼로 콘체르토 쓰고 있어요. 첼로 음색이 감이 잘 안잡혔었는데 너무 잘됐어요.

이적이 앉은 자리보다 좋은 자리에서 요즘 쓰고 있는 첼로의 소리를 듣게 해줄 수 있었으니 창작하는

고된 작업중에 커피 한 잔 내미는 여유 정도일지라도 내가 해준게 있어서 참 다행이다.

 

 

 

 

연주가 끝났을 때 속삭였다.

..고맙다. 네 덕분에 오늘 너무너무 좋은 연주회에 왔어. 아마 너 아니었으면 미샤 마이스키가 온다던데

  하면서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못 옮겼을거야. 오늘 공연은 다~~네 덕분이다.

그가 연주한 음악들이 자주 듣던 곡들은 아니어서 선율은 금방 기억에서 지워질지 몰라도 감동은 늘 가슴

한복판에 살아서 숨을 쉴 것이다.

여러번의 커튼콜에 앵콜이 무려 다섯곡 연주되었다.

내가 아주 귀하게 대접 받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참 따뜻한 사람임이 느껴졌다.

아무리 훌륭한 음악이라도 사람을 앞설 수는 없는 법, 그가 환호하는 관객들에게 화답하는 정성스러움이

그의 연주 못지 않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지칠텐데..이제 보내드려야 하는거 아닌가 생각할 즈음에 앵콜 연주가 계속 이어졌더랬다.

8시에 시작된 공연이 10시 20분쯤에나 끝났나보다.

 

 

그런데 끝나고 나와서 한번 더 놀랬다.

길게 늘어선 사람들 앞에 책상과 펜이 두 자루 놓여있었으니..

..아마 자정쯤에나 끝나겠다. 와~~!! 어떻게 싸인회까지 하실까!!

..그러게요. 고모 운이 너무 좋아요. 저런 대가를 이렇게 바로 앞에서 보게되다니. 자리를 정말 잘 잡았어요.

  저는 언제쯤에나 저런 대가와 인사라도 나눌 수 있게 될까요?

..곧 그렇게 될거야. 좋은 곡을 써.음악하는데 있어서 다리 길이나 전체 비례 같은거 전혀 중요하지 않은거

  확인했지?^^ 그치만 그 키에 살 찌면 모냥빠지니까 몸매관리는 늘 잘해라.

..당연하죠.

비였는지 눈이었는지.. 촉촉하고 포근한 특별시의 겨울밤이 우리의 훌륭한 금요일 기분을 두배로 부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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