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만큼 여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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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만큼 여행하기2

도랑치고 가재잡고

틈틈여행 2011. 8. 16. 00:36

여행은 은주로부터 시작되었다.

남편이 아이들 돌봐준다며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도 있고하니 휴가를 다녀오라 했다는 것이다.

언제 1박으로 여행가자고 노래부르던 농춘은 하필 은주의 휴가에 청송 친정집에 고추를 따러 가야한다나?

은주의 휴가를 책임 맡은 재금이 이러저러 조율을 해서 고추도 따드리고 여행도 하자는 쪽으로

일을 진행시켰고 덩달아 남편에게 허락받고 아이들 맡긴 혜숙과 소현도 신이났다.

나는 말복이라고 가족들 모두 모이는데 제일 먼저 도착해서  설거지 좀 하는척 하다가 늦게 도착하는

가족들 얼굴은 보지도 못한채 돌아와 길을 나섰다.

 

 

 

 

초록고추 빨간고추 색깔 구분 가능한 시간이면 벌떡 일어나 고추 따고 여행시작하자 해놓고

5시에 맞혀놓은 알람에 아무도 일어나지를 않는다.

5분만 더 자려던게 훌쩍 한시간이 흘렀다.

밤새 내린 비로 옷 젖는다고 고추밭에 가지 말라시는 어른들 말씀에도 이닦고 세수 안한 얼굴에

자외선 차단제 바르고 어른들 몸빼바지며 장화, 장갑도 찾아 보무도 당당하게 고추밭을 향했다.

이 풍경을 보니 주산지가 얼마나 땡기던지..잠재우느라 애먹었다.

 

 

 

 

 

밤에 지나는 길에 몰랐는데 흐미..내가 알고 있던 고추밭이 아니다.

지난 가을 사과밭에 달기폭포에 다녀오면서 들른 그 고추밭과는 사뭇 그 규모가 달랐다.

"왜 이런 밭이라고 말 안했어!! 한 이랑의 길이가 울언니네 고추밭 이랑들 다~ 합친 길이다, 뭐"

초여름, 이랑 사이에 잡초 자라지말라고 검은 비닐을 깔러 왔던 재금이들에게 툴툴거렸다.

울언니네 밭이 그런밭이라면 언제고 가서 일을 도와주겠단다.

아이들까지 데리고 와서 비닐 깔던 그때, 언니네 농사는 한번도 도와주지 못한게 미안해서 농춘네

농사를 거들러 내려오지 않았었다.

농춘의 아버지는 천식으로 걸음도 많이 못걸으시고 어머니는 얼마전 피부암수술을 받으셔서 칠순이

넘으신 두 분께 많은 농사일은 버거우실 수 밖에 없다.

그래도 품삯을 주면서 하루 고추를 따셨다고 밭의 절반정도는 빨간고추가 보이지 않았다.

 

 

 

 

한 이랑씩 맡아서 고추밭으로 들어갔다.

첨엔 수다도 떨고 노동요도 부르며 즐겁게 하다가 말이 점차 줄어들어가더니 절반쯤 가서는

신음소리가 나오기 시작이다.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고 어깨가 결리면서 손끝엔 힘이 빠져서 자꾸 고춧대까지 꺾게 된다.

어른들이 이걸 가장 염려하셨는데..

고춧대에서 물이 떨어져 옷이 다 젖었고 일어나 허리를 펴려고 해도 쉽지가 않았다.

다리가 아파 쪼그렸던 자세는 철퍼덕 주저앉으면서 속옷까지 흙물이 들었다.

울언니가 이렇게 힘들게 농사 지어서 우리를 먹였던거구나..

힘이 들수록 언니들에게 미안함이 더해져 마음에 두껍게 더께가 생겼다.

고추는 물에 다 떠내려 갔으니 배추농사 지을 때는 꼭 가서 도와야겠다 맘먹으면서...

"내년엔 무책임한 농사 그만 지으시라고 하자. 에구 힘들다!!"

길게 한 이랑씩 따고는 완전 지쳤다. 네시간 가까이 일했나보다.

우리가 이정도이니 어른들은 얼마나 힘드실까?

 

 

 

 

몸을 움직여 일을 하고나자 뼛속 마디마디, 마음 속 깊게 껴있던  묵은때가 벗겨져 나간다.

손끝이 아파 머리 감기도 힘들지만 기분은 아주 건강한 상태가 되었다.

삼겹살에 묵은지 구워서 꿀맛나는 아침 밥을 먹고 설거지를 마쳤다.

"괜히 일도 못하면서 번거롭게만 해드려서 어떻해요?"

서너이랑 남은걸 마무리 못해드려 못내 죄송스러웠다.

서울서 고추따러 와준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하시며 우리가 부탁한 밥과 김치를

챙겨주신다.

"어머니, 송이버섯 언제 따러 가실거에요?"

음력 8월 말쯤이라고 하신다.

거듭 송이버섯 나올 때 다시 찾아뵙겠다고 인사를 드리고 우리는 여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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