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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만큼 여행하기
남도 1번지의 캐논, 후지짝퉁 본문
"이거 사진 잘 나와요?"
"이건 안나와요. 이건 재생이에요."
"재생이요? 그게 뭐에요?"
"함 보실래요?"
"아..안돼요. 그냥 막 뜯으시면..'E'자 나올 때까지 못 돌렸단 말예요. 사진 다 날아가요"
1회용 카메라 얘기다.
END의 'E'자인지 암튼 'E'자가 나올 때까지 레버를 돌리라 했는데 재금과 나는 하나씩 맡아서 돌리고
돌리다 지쳐서 그냥 가져 간 거다. 무슨 다국적 대기업에서도 카메라를 재생해서 쓰냐 분개를 하려던
찰나 이건 값이 싸지 않더냐며 이런건 사진이 잘 안 나온다고 유리 상자 안의 것을 가르켰다.
사실 이런걸 아주 오래전 딱 한번 썼던 기억으로 2000원 정도겠다 싶은걸 재금이 칠천 원씩 줬다는데..
"이건 원가가 이천 원이에요. 우리가 파는 이건 만원인데 이익이 별로 없어요."
'아저씨, 이거 똑같은 후지 아니에요?' 하면서 순간 나는 알아챘다. 그건 늘 보던 초록색 포장이었을 뿐..
내가 가져간 카메라 겉 종이를 보니 'EZ SNAP'을 왜 나는 후지에서 만든 EZ SNAP이라 생각 한 거지?
"어머머머!! 어떻게 이게 후지가 아닐 수가 있어요? 어머나.. 이런 것도 짝퉁이 있어요? 초록색만 보고
당연 후지꺼라고 생각했는데...어떻게 후지라고 하나도 안 써있는걸 몰랐지? 정말 이런 것도 있어요?"
우선 웃기고 황당했다. 급해서 멀리 여행 갔다가 시골에서 샀다하니 시골 뿐아니라 도시에서도 밖에
나가면 거의 이런거 판다고 하신다.
"언니 여긴 시골 문방구라 싸네. 전에 관광지라서 그랬는지 만원 받던데.."
재금이 카메라 두 개를 사와서 하는 말에 관광지는 이래저래 바가지라고 맞장구를 쳤는데...
"재금, 그 카메라 후지 짝퉁이었어. 초록색 포장 속 카메라에서 노랑 코닥 필름이 나왔어"
"맞아, 언니. 내가 만원짜리 살 때는 투명한 비닐 포장이 아이라 라면봉지같이 불투명 포장지였어"
갯벌에 아주머니 두 분이 바닷 일을 하러 걸어가시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차를 급히 세우고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준비했는데 모니터가 먹통, 이리저리 만져보고 눌러보고 배터리를 뺐다
넣어 봐도 렌즈가 앞으로 나온 상태에서 기절을 해버렸다.
밤새 충전해서 배터리를 넣어왔는데.. 이럴 리가 없는데..1년도 안된 나의 캐논이 나를 배신할 리가 없다.
"언니. 나 언니 믿어. 고급 레스토랑 같아. 아~~ 너무 좋~다!!"
휴게소 야외 테이블에 테이블보 깔고 꽃무늬 냅킨엔 크로와상과 포크, 방울토마토와 오렌지, 보드라운
두부를 곁들인 싱싱한 채소 샐러드에 커피까지... 너무 행복해하는 재금이 이뻐 사진 몇 장 찍은 것 밖에
없는데 벌써 방전 되었나? 충전기가 있어야 뭘 어찌 해보련만.
"회진면 사무소에 가서 이 카메라 쓰는 사람 있나 물어볼까? 디카 빌려볼까? 그래서 노트북에 내려 받자."
"이 시골 마을에 카메라 전문점이 있으면 이참에 재금 디카 사면 좋을 텐데.."
어디 들리고 어디서 놀다 가자고 내려오는 동안 많은 곳을 점찍었는데 이노무 카메라가 기절을 하다니!!
일본에서 날린 1박 2일 사진보다 찍을 수조차 없는 남도 1번지의 풍경들이 더 아깝고 그냥 눈도장만 찍고
와야 한다는 것이 내 팔다리의 힘을 쪼~옥 빠지게 했다. 울고 싶어졌다.
"아무리 눈으로 보고 가슴에 담는다 해도 금방 잊게 돼있어. 다 담아내지는 못해도 사진이 그 추억으로
가는 통로가 돼주는 거란 말야. 어떻해~~잉."
그러다 딱 떠오른 생각이 1회용 카메라였고 요즘도 1회용 카메라가 있을지, 이런 작은 바닷가 마을에도
있을 지가 의심스러워 아름다운 풍경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동동거리며 들어선 작은 마을 문방구 유리창에 빛바랜 후지 1회용 카메라 광고스티커를 발견하고 반색,
그러나 문이 잠겨있다. 안을 들여다보니 있다, 있어!! 문에 붙어있는 번호로 전화를 하려는데 앞에서
장사하시는 아저씨 말씀이 쥔이 제주도에 가셨다는... ㅠ.ㅠ 참. 안된다, 오늘.
무겁게 굴러가는 차바퀴, 그러다 조금 더 가서 만난 문방구에서 다행히 1회용 카메라를 살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도 한참을 캐논을 포기 못하고 바닷바람도 쏘여줘 보고 햇볕도 쪼여줘 보고(사실 두 가지
다 아주 나쁜건데..) 뭐냐 부족하야 이러냐 따져 물었다.
2년 벼르다 드뎌 이번에 찾아간 전남 장흥 회진면 선학동마을은... 맙소사!! 이미 유채꽃이 아니라
유채기름을 짜 와야 할 형국으로 우리를 맞았다. 하지만..하지만.. 차라리 이게 다행이다 여겼다.
내가 찾아낸 선학동마을의 만개한 유채 사진 한 컷에 홀딱 반해 따라나선 재금에게 꽤 민망한 노릇,
그래도 좋다하니 이 또한 눈물겹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카메라도 열악한데 너무 아름다웠으면
얼마나 가슴이 찢어져라 아팠겠냐 말이다. 흑흑..
아니 황금벌판이 아니어도 선학동마을은 충분히 순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회진 바닷가가 고향이라던
벨기에의 정혜씨 생각이 진하게 났다. 저 마을 어디쯤이 그녀가 뛰놀던 곳이겠거니 생각으로 가늠했다.
회진은 늘 그녀의 고향이라서 참 정스럽게 다가온다.
우린 카메라 셔터(셔터라는 단어를 쓰기조차 민망한..)를 누를 때마다 배가 아프도록 웃었다.
사진이 될 런지 의심스런 것도 웃기고 찍는다고 해놓고 칙칙칙칙 필름을 안감아 헛방을 누르는 것도
웃기고 삼각대 이용이나 셀프타이머 기능을 기대하는 것도 웃겼다. 둘이 같이 찍을 수 없음이 아쉽다가
찍어달라고 부탁 할 사람이 없는 것도 차라리 고마운 일이라 여겼다. 광속이다시피 새상품이 쏟아져
나오는 디지털 시대에 한 장 찍어주실래요 부탁하며 내미는 가뿐한 1회용카메라가 얼마나 모냥 빠지는
일이냐며 허리를 꺾고 웃었다.
카메라 문제 때문에 밥도 때맞춰 못 먹고 화장실도 못가고 우리의 생체리듬은 그리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타동네에서 밥을 먹기가 어려운 일이다. 작은 바닷가 마을은 더더욱. 일단 나가보자고 선학동 마을을
벗어나 강진으로 나가기로 했다. 한참 달리다 다시 차를 획 꺽어서 농로로 접어들었다. 어차피 재금은 나를
온전히 믿는 나의 신도이니 이 교주는 마음대로 여행할 권리와 책임이 있었다.
우리가 찍어둔 강진의 어느 논밭보다 바다와 어울어진 이곳이 더 훌륭했다. 연보랏빛 자운영이 지천이고
그 끝엔 푸른 바다, 그 너머 더 멀리에는 달마산이 병풍인데 누구라서 이곳을 뿌리치고 가겠냐는 말이다.
우리는 조금 남은 간식으로 허기를 때우고 한참을 자운영 벌판을 거닐며 자운영 꽃송이만큼 감탄을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남도1번지는 눈물겹게 아름다운 풍경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많은 남도 여행 중 이렇게 보드랍게 색이
펼쳐진 남도 여행은 처음이다. 길 건너 멀리 유채 밭이 욕심이 나서 꼬불꼬불 시골길을 돌아서 찾아갔다.
서녘으로 기울기 시작한 햇살을 마주하고 바라보니 멀리 검푸르게 산이 있고 그 앞에 푸른 바다, 연두빛
물결을 이루는 보리밭, 연보랏빛 자운영, 노란 유채꽃과 사이사이 그것들을 키워내는 기름진 붉은 땅이
어울렁 더울렁 숨이 턱턱 막히는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선그라스를 벗고 자연이 만들어내는 색을 즐겼다. 자연이 주는 색으로 일상의 오르가즘을 즐기는
소중한 시간이다.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여행을 하게하는...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들 모두와 함께 이 아름다움을 공유해야하는데...
나 스스로 감당 할 수 없이 밀려오는 이 육중한 책임감.
우린 들판에서 노느라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5시가 다 되어 간다.
고창 청보리 밭에 가기로 했는데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힘들겠다. 그보다 더 힘든건...ㅠ.ㅠ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의 논밭에서 놀아도 우리가 나비이거나 벌, 혹은 꽃일 수는 없었다.
우리는 사람.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해결하기 위해 부지런히 강진으로 가서 해우소부터 들리고 밥을 먹었다.
고창엘 가면 해가 질 무렵이라 여행이 안 될 것 같았다.
"언니 보리밭 많이 봐서 꼭 안가도 돼. 언니가 알아서 정해"
그럼 고맙쥐~. 재금이 꼭 가봐야 할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언제 일부러 또 오겠냐 싶고 오랫 만에 나도 가고
싶어서 마지막 여행지로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가기로 했다.
다산초당은 고즈넉했다. 관광버스에서 내린 한무리 공무원틱한 아저씨들마저 반갑게 늦은 시간 나무숲은
어둑신했다. 15년 전 남선이와 왔던 이후 처음이다. 많이 달라져 있었다. 주차장이 넓게 마련되어 있고
떡하니 뒷산 풍경을 먹고 들어선 건물이 이물스러웠다. 초당으로 가는 길에 두충나무 산책로가 이쁘게
조성되어 있었지만 그 끝은 산자락을 툭 잘라서 그대로 드러난 나무뿌리들과 사이의 흘러내리는 붉은
흙들은 볼쌍 사나웠다. 에이 ~~ 꼭 머리와 돈을 이런 식으로 밖에 못쓰는겨?
재잘거리며 내려온 초등학생들이 떠나니 다산초당은 정약용선생이 머무르시던 시절처럼 조용했다.
깜짝 놀랄 풍경을 보여주마 약속한건 천일각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곳엔 청량한 바람이 그득했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라 써 있건만 아저씨들이 한글 미해득자인 모양. 그냥 구둣발 인 채로, 운동화를
신은채로 그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매끄러운 마룻바닥에 올라가 있다. 신발을 벗는 내게 민망하게 왜
그러냐며 그냥 올라 서란다. 그래도 꿋꿋하게 운동화를 벗고 올라서니 대여섯 남자들이 우르르 내려가서
안내문을 보며 정약용선생의 정신 운운 논한다. 한글을 아주 모르는 사람들은 아닌가벼.
그 덕에 우리 둘이 천일각을 독차지하고 해가 뉘엇뉘엇 기운 저녁나절의 구강포를 흔연한 마음으로 즐겼다.
해가 저물어 쌀쌀해진 백련사엔 스님의 목탁소리와 우리뿐이었다.
하루여행 마무리로 참 좋은 곳이었다.
이제 동백 숲은 반짝이는 초록 잎이 아니라 까만 숲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여러분, 후지짝퉁 1회용 카메라 사진 디지탈화 해보셨어? 안해봤음 말을 하덜덜 말어!!
색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이해를 돕기 위해 괜히 주저리주저리 글만 길어져서 미안한데
나도 나름 애썼다니까~. 사진 정리하는데 눈이 빠지는줄 알았다구.
남도 1번지 ↓이런색 절대 아냐. 내가 나름 한 색 하잖어. 나 못믿어?? 믿지, 믿지??
내년 4월 꼭 가보시기 바래. 아!! 떠나기 전에 카메라 정비 잊지 마시구. 명심햐~~
정비 안한 카메라 들구 집 나가면 개고생이더라니까!!^^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더이상 콘텐츠를 노출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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