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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수니 일기2

쉘 위 댄스

틈틈여행 2011. 6. 20. 22:31

"어머..이집이는 꽃밭에 채소를 심었네. 꽃밭엔 꽃만 심어야지 이게 뭐래? 난 꽃밭엔 꽃만 있는게 좋아"

"내가 보기엔 채소밭에 꽃이 얹혀 사는거 같은데?"

텃밭인지 꽃밭인지 분간이 안가는 작은오빠네 마당을 보면서 언니가 먼저 흉을 보고 내가 장단을 맞쳤다.

엄마의 풍요로운 꽃밭을 보고 자란 우리 형제들은 엄마만큼이나 꽃욕심이 대단하다.

 

그럼 남의 꽃밭에 대놓고 흉을 잡는 큰언니네 마당은 어떠냐?

한마디로 아주 정갈하다.

커다란 화 분 두 개에 아마릴리스 붉은 꽃이 탐스럽게 피어있고 목수국은 꽃망울을 팡팡 터트리기 시작했다. 늦도록 금낭화는 분홍 복주머니가 매달려 있으며 붓꽃에 샤피니아, 팬지가 한창, 끈끈이 대나물, 술패랭이도 한무더기씩 제철을 맞았고 참나리도 곧 '나는 여름꽃이야!'하면서 채비를 마치고 피어날 기세다.

어디서 얻어다 심었는지 보랏빛의 용머리가 제법 많이 퍼져 있고 봄에 내가 사다준 분홍 안개꽃 화분도

언니는 아주 잘 키우고 있다. 제라늄의 선홍색은 활활 타오르는 태양과 맞짱을 뜨는 형색이다.

이것 말고도 더많은 꽃들이 어울렁 더울렁 계절을 달리하며 피고지는 꽃밭이 언니의 꽃밭이다.

 

꽃밭과 밤나무 자두나무 앵두나무 보리수 오가피 엄나무들을 빼면 모두 텃밭이다.

"우리집으로 시장 보러 와"

상추 오이 가지 고추 파 토마토 등등등..

"형부는 자기가 키운거 버리면 싫어하니까 많이 가져가"

언니랑 나는 상추를 한 장 한장 뜯어서 담았다.

"얘, 파가 농약 제일 많이 한다드라. 파 농사꾼들도 푸른 잎 부분은 안먹는대. 파 이파리 빼면 뭐 먹을거

있니? 많이 뽑아가라. 농약 한번도 안한거야. 재형이도 좀 갖다주고"

언니는 아예 다듬어 챙겨준다.

고추는 맵지 않은걸로 땄고 오이도 몇 개 땄다.

"지난번에 한 개 따서 먹어보니까 완전 보약 먹여 키운 오이맛이드라. 왜이케 쓴거야?"

가물어서 오이가 쓰단다.

"아이구. 언니랑 형부 완전 춤바람 나서 농사를 제껴놓으셨고만. 오이에 물 좀 주시지 않고"

 

울형부 병원 예약도 바꾸실 만큼 라인댄스 실버댄스 하시는 날은 철저히 지키신다.

"난 형부가 그렇게 춤에 빠질지 몰랐어"

"춤선생이 젊은 여선생 아냐?"

아니란다. 남자 선생이란다.^^

"형부가 그렇게 춤시간에 안빠질라고 하시는데 향기로움님 춤 배우는 날 오시면 어쩔래?"

"어머나, 그것도 그렇다 얘"

언니는 내가 이번주 바쁠거라 했더니 향기로움님 오시면 하룻밤 묵어가시게 하고 식물원에 놀러가고

맛난거 사드릴테니 나더러 걱정하지 말랜다.

향기로움님 제대로 대접 받으실라믄 춤 레슨 있는날 피하셔야하는데...

 

형부랑 언니는 아침에  나란히 산행 한시간 하신 다음 샤워하고 문화센타로 행차, 춤을 배우시는거다.

올해는 발표회 안했냐, 했으면 왜 우릴 안불렀냐, 우리가 이쁘게 하고 가서 기 살려드렸을텐데...

"에이, 뭘..잘 추지도 못하는데. 선생님이 누구 초대할거면 하랬는데 니가 어디 놀러갔을거  같아서.."

"미리 말하면 행락보다 언니가 우선 순위지. 담부턴 꼭 먼저 알려줘."

"하긴..어느집은 아들이라고 오긴했는데 꽃 한다발도 안들고 덜렁덜렁 그냥 왔드라"

 

내가 언니네 도착했을 때 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집안 청소를 하고 있었다.

"무슨 청소여. 걍 대충 드럽게 살어. 청소할 시간에 얼굴 가꾸고  몸매나 가꿔"

"하도 싸질러 다녀서 집에 먼지가 뽀얗게 앉았어"

"청소는 화장 안하시는 형부가 하시라고 해. 청소할 시간에 언니는 화장이나 이쁘게 하고. 형부, 요즘 젊은

 사람들은 남자들이 청소 다 하는게 대세에요"

"난 젊은 사람이 아니잖아"

형부도 충분히 젊으시니 대세를 따르시라 했다.

형부는 혼자 식사 챙겨드시고 설거지 하시고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일이며 밖에 청소는 다 하시는데 집안

청소는 한번도 안하셨단다.

"아이구..언냐, 그럼 더 바래지 말아. 지금 하시는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언니는 고추를 따 담으며 형부가 들으실새라 소곤거렸다.

"어떨땐 힘들어 죽겠는데 형부가 춤 연습하재서 미치겠어. 혼자 살면 외롭고 둘이 살면 괴롭다더니.."

"어이구..복에 겨웠어요. 혼자 사는 할머니들 앞에서 그런소리 말어. 돌 맞는다. 찍소리말고 연습하셩.

 형부 진짜 밖에서 춤바람 나실라"

"그래. 괜히 나가서 술이나 마실까봐 내가 연습하잖니. 암튼 다행이야. 형부가 하기 싫다면 나 혼자 다니는

것도 어려울텐데 형부가 좋아하니까 내가 편하지. 스포츠댄스도 배워볼까 생각중이야"

"그래. 그거 배워. 그러면 언니 허리에 두른 튜브 쪽 빠질거다"

 

우리 다른 형제들은 형부와 언니의 춤바람에 박수를 보내고 응원을 한다.

까이꺼 목말라 씁쓸해진 오이면 어떻고 토마토가 덜 달려 조금 먹으면 어떠랴. 붉은고추 수확은 내가  

도와드리면 될거고..

매일 채비하고 나가실 곳이 있고 열중할 것이 있으니 두 분의 마음 건강 몸 건강에 마음이 놓인다.

내일은 백화점에 가서 예쁜 셔츠를 살 생각이다.

형부의 춤사위를 한껏 돋보이게 할, 10년 쯤 젊어보이는 셔츠를 사서 선물해야겠다.

"형부. 이렇게 이쁜 셔츠 선물 하는 처제를 둔 친구분 계세요? 없으시죠? 현주가 최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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