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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만큼 여행하기
르누아르와 이불보따리 본문
난 참 쉬운 여자다. 주말에 불러내기 쉬운 여자.^^
서방없지, 시댁 없지, 정기적인 모임 하나 없지..한가한 여자다.
물론 젤로 무서운 고3 아들이 있어서 요즘 여행 금단현상에 시달리긴
하지만..산행 후 피곤한 팔다리를 숯가마에서 찜질로 달래고 나온 토요일 밤에 문자가 하나 와있다. 내가 쉬운 여자임을 아는 D시의 그녀다.
르누아르전 봤냐고, 일욜에 시간 있냐고. 티켓이 두 장 생겼다고.
오브 코~스지. 웬만해선 일욜에 움직이지 않으니 약속 없는 일욜
시간이야 널널하고 아들녀석 일찌기 야구하러 나갔다 온댔으니
마음까지 가볍다. 오케이 오케이~~!!
르누아르를 비롯해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은 유년시절의 한 페이지다.
나 국민학교 시절 산아래 허름한 우리집엔 열두달이 한장에 담겨있는
'국회의원 오치성' 달력과 반대편 벽에 두 달이 한꺼번에 있는
'세계의名畵' 달력이 걸려있었다.
화가 이름과 작품연도 크기 그리고 캔버스에 유화라 쓰여진게 많았다.
모나리자, 이삭줍기도 있었고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도 있었다.
그중의 폴 세잔의 붉은 조끼 입은 소년은 나를 무척 감동 시켜서
그림에 무식쟁이인 내가 오늘날까지 세잔을 좋아하게 만들었다.
새학년이 되어 책을 쌀 때 다른 달력은 모두 하얀면을 겉으로 썼지만
세잔의 조끼입은 소년은 얼굴이 책 앞면에 오도록 책을 쌌다.
또 우리집엔 밀레의 '만종' 그림액자가 있었다.
아마도 멋 좀 내던 큰오빠의 손을 통해 들어왔지 싶은 그 액자는 어느
소장가의 원본 그림만큼 우리집에서 대접을 받았었다.
이러저러한 연유로 인상파 그림들은 정스럽다.
일요일 아침 비가 내린다. 야구도 못가고 보테르전 가고 싶다는
녀석에게 미안해서 먹고싶다는 유부초밥을 해줬다.
멀리서 KTX까지 타고 오는 친구인데 내가 조금 늦었다.
얌전하게 겨자색 가디건을 길게 입은 그녀가 책을 읽고 있다.
나 같으면 손전화 만지작거리며 씩씩거리고 있었을텐데..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어라!! 이것은 무엇이냐?
젊은 여성과 그녀 사이의 빈의자에 웬 보따리가...이거시 무엇이여?
설마 젊은 여자애가 들고 나올법한 보따리는 아니고 그렇담 그녀의
보따리? 아니겠지~~사람 잘못봤나, 그녀가 맞기는 한 것인지 얼굴을 다시 봤다. 르누아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보따리 이불보따리란다. 뭐시라? 그럼 집 나온겨? 서울로 유학와 있는 아들에게 전해줄거란다.
..울동네 누가 이거 보자고 서울 올라가긴 뭐하다구 어젯밤에 갑자기
티켓을 주길래..줄라면 진즉 주던가. 오늘이 마지막이래.
..그래서 이거 보자구 올라오기 뭐해서 이불보따리 들고 왔어?
..ㅎㅎ 엉.
..그거 들고 다닐라구?(설마 아니겠지?)
..엉. 안 무거워. 왜 부끄러워? 난 괜찮아.(사실 부끄럽거덩)
..뭐..그렇다기 보담..거추장스럽지 않겠어? 지하철 보관함에 맡기자.
이불이 투명한 비니루 사이에 보이긴 해도 둘레둘레 박스테이프로
붙이고 그 테이프로 손잡이까지 만들어서 아주 야물딱지긴 하다만...
도무지 지방도시에서 올라온 촌티가 팍팍 나서 안되겠어.
르누아르에 그 이불보따리? 아무리 생각해도 넘 모냥빠져.
우산꽂이에 내 장우산도 꽂아두고 마침 물품보관도 받길래 보따리도
맡기기로 했다.
..푸하하하..봐라. 여기 보관 품목중에 이불은 처음이다. 어떻게 그림
보러오면서 이불보따리 들고나닐 생각을 했어?
속닥거리다 큰소리로 웃는 우릴 보고 직원이 탐탁잖은 표정이다.
..여기 보니 이불을 맡기는 사람은 없어서요. 이 사람이 집 나왔거든요.
직원도 같이 웃는다.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붐볐다. 사람들 마음은 다들 비슷한게지.
내가 초대해서 걸어 놓은 그림이 아니구서야 어찌 그림이 지닌 가치에
맞게 한가롭고 우아하게 볼 수 있겠어. 이렇게 어울렁더울렁 보는거
아니겠어?
..나는 전생에 르누아르의 모델이었나봐. 풍만한 허리에 펑퍼짐한
엉덩이, 후덕한 허벅지, 뭐하나 부족한게 없잖아? ㅋㅋ
그림들이 참 편했다. 세계의 명화 달력의 값싼 인쇄의 빛깔이 아닌
르누아르의 손끝에서 나와 빛과 어울어진 그 색들이 기분을 좋게했다.
그림을 다 보고 나와서 이불보따리를 찾으려는 그녀, 내가 말렸다.
우아한 정동길을 걸어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그 이불보따리는 적절치 않다. 암~ 안되고 말고.
우리는 예쁜 수제가구도 전시 판매하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주문한 고구마핏자와 해물스파게티 성공이다.
그녀는 고3엄마라고 내 앞접시에 새우랑 홍합을 건네준다.
..지난해에 누가 이런 대접 해줬었구나? 기분 좋다. 2년후엔 내가 다시 이렇게 해줄게.
물론 뜻하지 않게 좋은 전시회에 초대해준 답례로 점심은 내가 샀다.
아뉘~ 그런데 그녀, 일본에서 돌아왔다는 아들 전화를 받더니 쌩하니 가야 한단다.
밥을 먹었으면 밥값을 해야쥐~. 도리상 밥값 만큼 수다 상대 해줘야 하는거 아냐?
나 대한민국 고3 엄마란 말이야. 내 말 다 들어줘야하는거 아니냐구!
..고3엄마. 그림 다 봤으면 집에 있는 그림 보셔야지. 어여 들어가셔.
그녀는 아들을 만나러 이불보따리를 들고 2호선 출입구로 총총 사라지고 나는 1호선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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