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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만큼 여행하기2

비참하지 않은 산행

틈틈여행 2008. 10. 12. 21:06

애초에 계획한대로 떠날 일이었다.

명성산 등산 얘기다.

9시에 도착을 했음에도 주차장엔 차량이 가득하고 등산로엔 사람이 가득이다.

7시에 출발을 해야겠다 맘먹고 아침 준비를 하다가 무릎이 시큰거리는 듯한

느낌에 다시 누웠다 일어나 출발을 했으니 계획보다 1시간이 늦은 셈이다.

사실 혼자 가는 것이라 안가도 그만이었으나 약간의 조바심이 나를 나서도록 했다.

너무 오랫동안 걸음을 쉬어야하는건 아닌지, 정말 이대로 내가 주저앉게 되는건 아닌지

애써 누르고 있던 조급증이 나를 부추긴 것이다.

 

9시면 그리 이른 시각이 아니긴 해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가물은 날씨에 먼지가 풀석풀석나도 이 먼지에 중금속이야 있으랴 싶었지만 목구멍과

콧속은 그게 아닌지 컬컬하고 답답하기는 했다.

사람이 많아 빨리 걸을 수도 없었지만 되도록 발바닥 전체가 지면에 닿도록

발걸음을 정확히 떼어놓기로 하고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완만한 등산로는 숨가쁘게 하지도 않고 무릎도 아프지 않게 하고 쥐가 날 염려도 없었다.

가끔씩 서둘러 붉어진 단풍들이 아침햇살 아래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빛깔로 등산객을  독려했다.

 

쉬지않고 같은 속도로 무릎에 온 신경을 쓰면서 억새꽃밭에 도착했다.

은빛으로 빛나는 억새꽃 물결이 나의 수고로움을 치하해준다.

한순간 딱 마딱드린 은빛 억새꽃은 나의 하루를 충분히 행복하게 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번잡하고 소란스럽고 카메라 들이 댈 곳 없게 사람 반 억새 반이었지만

이렇게 좋은 날씨, 이리 좋은 풍경을 누구라서 마다  하겠나 싶은 생각을 하고보니  울긋불긋한

사람들의 북적거림이 은빛 억새꽃 사이사이에서  또다른 풍경이 되어준다.

 

물 한 병 달랑 준비해서 올라간 산행이다보니 배가 고파와서 정상까지 가기는 어려웠다.

삼각봉까지 올랐다가 경사가 80도는 될만큼 가파른 자인사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오래 전 겨울에 그 길로 오르면서 죽게 고생한 기억이 새롭다.

젊은 연인들이 뒤따라 내려오는데 심하게 혀짧은 소리가 들린다.

'얘야, 혀짧은 소리  해서 귀여운건 다섯 살 까지란다.'

둘은 사람들이 얼마나 남았냐는 질문에 조금만 가면 된다고 하는 답변과 아직 멀었다는

사실적인 답변중 어느게 나을까 하는 얘기를 하면 내려오는데 바로 앞에서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녀석 둘이 멀었냐는 질문을 한다.

답변을 얼른 내가 했다.

"아직 멀었어. 니들 오늘 길을 잘못 선택했어. 계속 이런 길인데 니들 오늘 죽었다"

사실 어느산의 어느위치에서건 정상은 20분만 걸으면 나오는게 불문율이다시피 한다.

그러니까 누구나 희망고문을 주고 받는다는 것인데 난 웬만하면 근사치로 답변하는 편이다.

 

오늘 내가 택한 하산길은 어른들이나 어린 아이들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억새꽃 축제에

나온 가족들이 오르기엔  너무 버겁다.

짧고 굵게 오르는 코스인데..거의 내려왔을 즈음에도 오르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른길로 가라고 권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짧은 거리지만 공들여 천천히 내려오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굵직한 소나무가 빼곡한 숲을 오른편에 두고 왼편 멀리 산정호수를 바라보며 타박타박

걸어서 주차장으로 갔다.

명성산과 산정호수 사이의 모든 공간은 주차장화 되어 있었다.

 

전화로도 내가 혼자 간 것에 잔소리를 하던 녀석이 집에 돌아왔는데 또 잔소리다.

"그래도 엄마가 안전하게 잘 했어. 쥐도 안나고 무릎도 안아파"

"그게 아니고 비참하게...너무 비참하다, 혼자 가는건.."

"아냐, 안 비참해. 니가 그렇게 생각하는게 더 비참하다 뭐~~"

녀석이 엄마가 혼자하는 나들이라도 비참하지 않고 충분히 행복하다는걸 이해 할 수 있을 때까지

건강하게 나다녀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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