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온천투어
"얘들아, 괜찮아. 지금 기상청 들어가보니 내일 울진은 햇님 반, 구름놈 반이야.
난 혹시 몰라서 우산 우비 고어텍스 챙겨놨어?"
목요일 저녁 한여름 폭우같은 가을비속에 차를 세워둔채 톡으로 여행에 관해 의논을 했다.
이번 '모자란걸스' 여행테마는 온천투어. 효도관광도 아니고 어느새 온천 찾아다니는 나이가 되었다니.
뭐 나는 이제 여기 쑤시고 저기 결릴 나이라고 쳐도 아홉살이나 어린 셋은 어쩔것이냐고..
"언니, 나 차타고 다니다가 톡 내려서 잠깐 둘러보는 여행 좋구 온천도 좋아."
여차저차 무릎수술 하고 많이 걸을 수 없어 답답한, 이사해서 어깨 아픈, 회전근개 파열..
역시 우리 모자란걸스는 노동력과 경비만 1/n이 아니라 아픈것마저다 똑같은 지경이다.
뜨끈한 온천하며 몸을 풀어주는 여행에 다른 의견이 없다. 왜냐? 온천투어의 탈을 쓴 울진여행이니까..
기억이 가물한 하나, 울진이 첨이라는 둘, 그리고 대충 울진여행을 했던 나, 그러므로 모든 곳이 새롭고 즐거울터였다.
추암촛대바위의 일출이었으면 좋았으련만 시간을 맞추지못했다. 동해휴게소에서 해를 맞이하고 아침을 먹었다.
우리의 아침은 진수성찬, 열가지가 넘는 반찬들에 넘실거리는 동해바다는 전채요리이고 반찬이기도하고
디저트이기도 했다.
먼저 덕구온천으로 갔다.
때빼고 광내고 난 후 본격적인 울진여행이 시작 될 것이다.
넓기도 하고 이른시간이기도해 헐렁한 대온천장은 밤샘으로 인한 피로를 풀었내기에 딱 좋다.
흠..응봉산에 가고 싶고 산책로도 걷고 싶다. 재금이가 혼자 놀테니 다녀오라지만 우리가 그리 의리가 없지는 않은바..
전열을 가다듬고 소광리를 향했다.
소광리 금강송군락지 근처라도 가보겠다는 의지에서 내가 울진을 선택했다.
언젠가 예약을 모두 마쳤을 때 새언니 병간호를 해야해서 포기했고 이번에는 많이 걸을수 없어서 트레킹은 꿈도 못꾸고
이렇게 소광리라도 가보자 했다.
`
그 마을 가는 길에 산골마을 넓직한 정자가 우리를 불러세웠다.
참으로 낭비가 심한 행정을 하고 있다 싶게 대여섯 채 집이 있는 마을에 아주 넓은 정자 두 개와 각종운동기구가 있다.
잔디 족구장과 벤치들까지 과하게 공원이 조성되어져 있다.
"이런식으로 세금을 쓰면 안되지잉. 산골 어르신들에게 진정 필요한게 뭘까 제대로 생각해서 복지정책을 펴야하는거 아냐?"
"암튼 이 정자가 좋아하겠다. 우리가 이렇게 사용해줘서.."
밥 먹고 누룽지 끓이고 과일 깎고 커피 마시고...
어디를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 급할 것 없이 눈부신 가을 볕을 피해 노닥거리며 한낮을 즐겼다.
가을이 들어서기 시작한 소광리 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군락지가 아니어도 울진의 많은 산들은 모두 금강송을 키워내고 있었다.
산길 구비구비 돌아돌아 금강송 숲이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예약을 하지 않아 이리저리 걷는길 끝에서 숲을 맛보는 우리를 용담 흰그늘돌쩌귀 그늘돌쩌귀 배초향 구절초 등
가을꽃들이 위로했다. 반갑다, 얘들아. 그리고 고마워.
불영계곡 바라보고 불영사에 들어설 때쯤엔 한기가 느껴질만큼 차가워졌다.
언제 단풍 곱게 들어있을 만추에 다시 와봐야지 하는 마음먹게 아름다운 숲을 가진 사찰이다.
불영사 가람 자체는 크게 마음을 움직이지 못해도 조성중인 숲길에는 욕심이 났다.
돌아나오는 길에 급히 불영사를 향하는 회사동료 가족을 만났다.
흠 이때 알아챘어야 했는데..
해가 넘어가는 시간, 우리가 하루 묵을 방을 찾아야했다.
길게 고민안하고 왔는데 방이 없다. 아는 사람 만날정도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울진을 찾은걸까?
애초에 리조트 예약을 못해 현지에서 결정하자 한거였는데 펜션 민박 모텔 모두 빈방이 없단다.
어쩌다 방이 있어도 너무 먼곳이었고..
여의치않으면 밥먹고 삼척으로 올라가버리자하고 죽변항에서 저녁을 먹었다.
여행하기 좋은계절이고 송이축제 기간이라 죽변항의 번잡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대충 먹자하는 맘으로 주차할 곳이 딱 한 군데 있는 음식점에 그냥 들어갔는데...아주 만족스러운 결과.
하지만 맛있게 먹으면서도 숙소 구할 생각에 편하지는 않았다.
삼척으로 올라가는 쪽으로 의견을 맞추고 올라가려는데 멀리서 번쩍이는 불빛으로 우리를 부르는 콘도형 용궁모텔.
길 찾기가 어렵다며 다른데서 묵겠다고 예약을 취소한 사람들이 있어 별관중 방 하나가 남았단다.
우와~~우리 복받은거지? 깨끗한 이브자리를 넉넉히 챙겨주고 바삭하게 잘 빨아말린 수건도 엄청 챙겨주는 친절한 주인.
울진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음에 가슴 쓸어내리고 결정을 잘내린 우리들 자신에게 듬뿍 칭찬을 해주었다.
푹자고 느긋하게 아침을 시작하면서 용궁앞에서..
울진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성류굴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즐겨보는 시간.
자연의 위대함 이전에 절대자의 숨결이 느껴졌다. 동굴안 호수를 지나칠 때는 '크리스틴 크리스틴' 하는 환청이 들린다.
오페라의 유령 무대가 떠올라서 흥얼흥얼 입속에서 노래를 부른다.
다만 한가지 줄을 잇는 관람객에 떠밀리다시피 급히 걸어야해서 아쉬웠다.
성류굴 가는 길에 요런 해찰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된 것.
"현주언니는 다른사람들이 꽃 따면 난리났을거야"
"엉. 난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사람. 하지만 여기 코스모스들이 우리 좋아할거야. 이렇게 이뻐해주고
즐겨주고 증명사진도 찍어주잖아."
찾아주는 사람도 없고 듬성듬성 자란데다 코스모스 키도 제각각..사실 꽃모가지 똑똑 부러뜨릴 때
엄청 미안했고 양심이 아팠다.
그러면서도 가을이면 한차례씩 이 꽃놀이를 즐기고 싶어지는 깊은병이 있다.
여행의 마무리가 백암온천이라 남쪽으로 내려가며 마음 닿는 곳에 들리기로 했다.
송이축제가 있는 만큼 송이를 먹는 일정도 있었지만 죽변항의 번다함이 생생해 사람에 치일게 무서웠다.
그 누구도 송이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코펠은 동생네 있는데 휴대용 가스렌지를 가져가겠다더니 함께 가져온 법랑냄비는 가스렌지에 올려지지도 않게 작았다.
양은냄비를 하나 샀고 오산리 바닷가 정자에서 라면을 끓였다. 밥과 반찬도 펼쳐놓고..
우리는 도시락 먹는 풍경을 중요하게 여긴다.
"남들은 우리가 이렇게 재미나게 노는 것도 모르고 궁상스럽게 볼거야, 아마..."
"혹시 오산리에서 돗자리 뒤집어 쓰고 라면 끓여먹지 않았냐 묻는 사람 나타날지도 몰라"
지난 겨울 태백산에서 비닐 두르고 와인 마신걸 후배가 보고 나중에 물었던 적이 있다.
우린 낄낄거리며 바람속에서 놀이처럼 한 끼 식사를 준비하는데 헉...
"추우면 저기 들어가서 밥먹고 놀다가도 되요. 내가 오산리 이장인데 비어있는 집이니까 상관없어요. 문 열어두고 나갈거에요"
지은지 얼마안되어보이는 깨끗한 집을 가르키신다.
"아,,,아니에요. 저희는 여기가 좋아요. 고맙습니다."
이번여행에 또하나 빼먹은 준비물이 있었으니 드립퍼. 내게 아주 중요한 건데...
아침에 빈속에 짜르르 신선한 커피를 마시려고 새 깡통을 땄는데 허걱..드립퍼!! 나는 벽에 머리를 콩콩 쥐어박았다.
커피 한 잔 마시겠다고 난리법석, 배꼽빠지게 웃겼다.
머리를 써 작은 생수통을 잘라 뒤집어 여과지를 받혔는데 어느순간 무게를 못이긴 여과지가 터지며 내려앉았다.
다시 머리를 벽에 콩콩 쥐어박았다. 커피가 너무 간절해서 가라앉혀 살살 따라 마셨다.
냄비를 살 때 드립퍼가 없어 대체품을 찾다 종이컵에 구멍을 뚫어 쓰기로 했건만 마지막 남은 종이컵에 홀랑
라면을 먹었으니 이 형국에 이르렀다.
동해바다 바라보며 고색창연한 꼬마코펠에 끓인물로 드립퍼없이 내리는 핸드드립 커피.
안마셔봤으면 말을 하지 마시라는..
백패킹이다 캠핑이다 즐기며 장비발 세우는 분들 보시기엔 참으로 남루해보일지 모르나 사진으로 찍어
자랑 할 수 없고 글로 길게 풀어 쓸 수 없는 깨알같은 에피소드들로 이번여행 역시 즐겁고 재미났다.
"앗! 저기..차세워!!"
바닷가에서 나 잡아봐라 한번은 해야한다며 의견을 모아두었기에 내 명령에 토를 달리 없다.
심한 바람이어도 겨울바다처럼 춥지않았고 짙은 회색 구름놈들은 하얀 구름님으로 변신해 바다풍경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단순한 바닷가에서 참으로 오지고 재미지게 한참을 놀았다.
배고파. 기름진거 먹고싶어. 우리 홍게 안먹어? 후포로 가자.
나는 어느집으로 가서 먹어야하나 막연해서 배를 손질하는 어느 선장님께 물었다.
왕돌수산횟집을 소개해주셨다. 경매장에서 바로 구입하는거라 좋다고..금당호선장이 보냈다고 하라신다.
요즘은 홍게살이 80% 정도만 차있다며 넷이 먹기에 제일 큰넘으로 세마리를 권해주는 왕돌수산 사장님.
거기에 작은녀석 한마리 서비스. 홍게가 익을동안 도다리물회를 주문했다.
맛있다, 맛있어. 잘하는 집이네. 도다리를 듬뿍 올려주셨다. 물회에 별맛 모르던 내가 홀딱 반했다.
싱싱함이 느껴지는 울진 붉은대게는 달고 맛있고 게딱지에 나오는 볶음밥도 맛있다.
무엇보다 붉은대게매운탕, 아..다시 먹고 싶다. 슴슴하니 시원하고 반찬들도 경상도의 일반적인 염도가 아니다.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들께 너무 잘먹었다고 인사를 하고 금당호 선장님께 좋은곳 소개해주셔서 감사해한다는 인사를
전해달라 할 만큼 만족스런 식사였다.
식당고르기 젬병이던 내가 요즘 물올랐다. 어딜가나 딱딱 입맛에 맞는 음식점을 찾아낸다.
기와를 얹은 건물의 '고려호텔' 꼭 개성이나 평양 이런 느낌 아니니?
백암온천은 추억의 목욕탕같은 분위기였다.
신발과 옷을 장 하나에 넣고 곳곳에 써붙여진 '빨래금지'가 오히려 정스럽다.
단조로운 내부에 어르신들의 바쁜 손길이 실내를 깔끔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맑고 깨끗한 물에 우리모두 진짜 온천이라는 믿음이 간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냉탕과 온탕사이..를 오가며 영육을 모두 릴렉스하는 시간을 가졌다.
돌아오는 길은 꼬불꼬불 끝이 없을것 같은 지독한 산길을 넘어왔다.
환할 때라면 태백산맥 넘는 이 길의 풍광이 참 좋을텐데 .
다들 잠들었어도 그나마 달빛이 어스름해서 무서움의 농도를 옅게해줬다.
일월산 청량산 .. 어둠속에서 만나는 표지판들에 설레임이 몰려왔다.
내 곧 다시 찾으리라.
또 하루 쉬는 날이 있다는게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연휴가 이래서 좋은거지 뭐.
꽉채운 이틀 여행을 되돌아보며 일요일 하루 혼자 스물스물 웃으며 여행의 피로를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