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매산, 철쭉 지고 사람 피어난..
대한민국 산악회의 수는 하느님도 모르실게다.
어마무지한 숫자의 산악회가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버스로 사람들을 전국의 산으로 실어나른다.
'대한민국 허당산악회' 시그널 하나 만들어 걸어볼까 하다가 생각을 접는다.
화장실만 머문자리 티안나게 깨끗이 할게 아니라
산악회들도 다녀간 티 제발 안내고 다녔음 하는 꼴불견들이 보여서다.
이 리본들이야 철망이라 안전한 편이지만 나뭇가지에 묶어놓은 것들은
가지가 부러지면서 쓰레기가 되고
산행코스에 따라 안내 화살표 그려진 종이들을 등로에 둔 채
마지막 사람이 수거하지 않은 산악회들이 많아 갈림길마다 볼상사나운 종이들이 희끗거린다.
물론 나도 아주 착한편은 아니라 여벌의 비닐봉지가 없다는 핑계로
띠불띠불 욕설만 내뱉으며 지나쳤지만 담 산행엔 주워담아야겠다.
요즘 이름있는 산들은 과하게 표지판이 잘되어있고 산행지도와 무전기등
종이를 깔고 다니지 않아도 충분한 장치들이 많다.
잔소리 해도 될 얼굴이 되었다는 애야님 말씀에 공감하며
요즘의 이렇듯 과민해진 나를 되돌아본다.
나 나이 먹어서 이런거니?..하는 물음에 아냐 나 하나부터 이렇게 해야돼 하는 결론.
우리나라 사람은 이래서 안돼...하며 일반화 시키는 것부터 안하려고 한다.
나도 그 우리나라 사람이어서 국민성을 만들어가는 1인이 아니던가.
11시 반에 모여 밤새 내려가 함양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 6시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뻑뻑한 눈과 함께 찌뿌등하던 몸이 청신한 아침 공기에 동화되었다.
산 잘 골랐지?
산철쭉을 즐겨보는 산이지만 울뚝불뚝 솟아 좋은 풍경을 만들어내는 바위로 충분하다며
바위마다 올라서 사진찍고 노닥거렸다.
황매산도 역시 땀나지 않게, 숨차지 않게...
올려다보면 바위산이, 내려다보면 다랭이 논과 저수지, 마을이 어울려 내 발목을 잡았다.
그랴~ 뭐 급할게 있냐, 내 너희들 충분히 봐주고 즐겨주련다.
후배는 나를 천송이라 부른다.
긴 다리 예쁘고 똑부러지게 생겨 말도 똑부러지게 잘하는데..
하는 짓은 어쩜 그리 허당이냐며..
돌발행동에 대처를 못하겠고 날이 갈수록 허당끼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천송이라 부른다.
그럼 얼굴 똑부러져 말 똑부러져 행동까지 똑 부러지면 얼마나 재쉅겠냐?
내 주변에 사람이 남아나겠어? 사람이 여백이 있어야하는 법이거든.
그러다 허당짓의 진수, 여백의 백미를 보여줫으니..
나무뿌리에 신발 앞이 끼면서 고꾸라졌다.
메고 있던 카메라가 턱을 친 것은 약간의 통증뿐이었지만
무릎...
튼튼한 원단이라 멀쩡한 바지에 피가 배어나왔다.
아휴..천송이 증말. 어쩐지 오늘 이거 가져오고 싶더라.
통좁아 걷어지지도 않아 그냥 가려는데 갖은 구박을 하며 밴드를 붙여야한다는 후배.
겨우겨우 올려보니 푹 패여져 피가 제법 난다.
도 매니저 기브스 해줘잉.
황매산은 철쭉 군락지에 5분~10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주차장들이 여러군데 있다.
그런 이유로 평원에 올라서자 사람이 사람이...철쭉 반 사람 반.
광년이 널뛰듯 하는 날씨에 철쭉 평원은 실망스러웠다.
피었던 꽃들은 견디지 못하고 냉해를 입고
계곡쪽의 철쭉은 봉우리인채 얼어서 시커멓게 시들어갔다.
암릉의 멋진 자태만으로도 충분하다 했던건 까맣게 잊고
아쉬움에 그래도 조금 꽃이 있는 군락지를 찾아들어 거닐었다.
둘이 먼저 오르고 천천히 걷는데 서너걸음 뒤의 일가족의 대화에 신경이 쓰인다.
에라, 말자...했다가 옮기던 발걸음 멈추고 뒤돌아섰다.
제가 나무를 좋아해서 그런데 진달래와 철쭉의 구별법을 간단히 알려드릴까요?
나는 간단히,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전부였지만 진달래와 철쭉, 그리고 산철쭉을 알려주었다.
미리 살펴보지 않고 와서 궁금했다며 고마워했다.
그 정도도 모르나..?? 난 정말 그게 더 궁금했다.
본격적으로 봉우리에 오르기 전에 바람없는 그늘을 찾앗다.
셋이 손 합해 준비한 점심 메뉴는 쌈밥.
두루치기를 보온병에 담아와 얼마나 맛나게 먹었던지...
..천송이는 저렇게 많이 먹는데 배도 안나오고 다리도 길게 해주고 하느님은 불공평해.
..관리 소홀로 니들만 하느님한테 혼날걸.
정상이 보이지는 않지만 반드시 이 봉우리를 올라서야 한다.
가파르고 긴 계단, 줄 지어 오르는 사람들.
우리가 너무 놀며놀며 와서 중간에 자동차로 온 사람들, 단체로 온 사람들과 맞물렸다.
으~~분명 아침에 넘넘 한적하고 좋았는데...
나오느니 한숨이다. 놀자.
쉴 틈도 없이 숨차게 땀나게 봉우리에 올라 전망대로 가니 사람들이 북새통.
건너다보이는 황매산 정상은 더 더 더 북새통.
한적함을 추구하는 내가 겪은 최고의 번다함이었다.
후배들이 올라갔다.
기다리는동안 누군가 나를 밀쳐 내 카메라가 나를 치는 바람에 통증이 심했다.
이런 젝힐..
후배들 아무리 기다려도 얼굴을 내밀지 않더니 포기한다고 내려왔다.
정상 인증샷은 이것으로 대신하는 걸로..
복잡한 길을 되집어 내려가기가 끔찍해 헐렁하게 한바퀴 돌기로 했다.
능선을 이루는 크고 작은 봉우리들에 오르락내리락 지루하지 않았다.
아무리 걸어도 아직 시간은 한 낮.
가뭄에 물이 별로 없는 합천호를 바라보자니 농부의 마음이 되었다.
처음으로 언니네 텃밭에 비닐 깔고 고추 심는 일을 도와드리고 나니
비가 제때에 와주어얄텐데, 고추들은 잘자라고 있나 마음이 쓰인다.
걸어온 능선을 되돌아보면서 느끼는 풍요로움.
그 이전에 그 곳들에서 만난 아름다운 풍경들.
요거요거 중독되면 빼내기 어렵다.
이런 중독에 빠진 사람들끼리는 통하는 법.
산 정상 정자에서 어느 여성 산꾼이 일행들 모두 하산했다며 말을 걸어온다.
맥주 슬러시도 마시라 권하고..꿀맛에 감사하고 함께 하산을 하다가
달팽이 속도에 맞출수가 없었던지 다른 사람들과 합류해 먼저 내려갔다.
하긴..우리가 느려도 마~~이 느리지.
쪼그리고 앉아 사진을 찍는데 지나가는 한무리 중에서..
그게 뭐에요? (경상도 억양)
샌드위치요
샌드위치? (경상도 억양)
천송이씨!! 빨리 와서 먹기나 해!! 그런짓 좀 하지말고.
도 매니저 내가 부끄럽냐?
참꽃마리 은방울꽃 쥐오줌풀 벌깨덩굴..
하늉하게 꽃 찾아 이름불러주며 내려와 시간을 보니 9시간 30분동안 산에 있었다.
그래 산행은 이렇게 하는거야.
셋의 공통된 생각이 잠줄여 달려와 즐겨 함께 할 수 있는 힘이 되준다.
이렇게 두 달에 한번 정도는 산행을 도모해달라는 말이 아주 큰 감사 인사로 느껴졌다.
암..그렇게 해주고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