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달팽이 속도
연휴중 2박 3일을 달팽이 속도로 지리산 자락을 거닐었다.
늦은 공부하는 혜선이의 과제, '한국의 음식'이 그니의 고향 하동을 선택하게 했다.
여러차례 발걸음이 있었지만 섬진강가 19번 국도를 달린게 고작이라 하동을 여행해보고 싶은 나의 욕심에서
어찌어찌 글을 풀어나가라 시작해 마무리까지 컨셉을 정해주고 여행계획을 세웠다.
혜선이는 자신의 과제를 위한 여행이라고 선뜻 2박의 숙박료를 지불하고 넷은 즐거운 준비를 했다.
드레스코드는 지난해에 이어 올 트레킹에도 몸빼. 이틀을 입고 하루는 등산복 입기로...
첫날 지리산 둘레길 일부, 삼화실에서 먹점마을까지 11km 가량 걸었다.
이정마을의 할머니 두 분이 예쁜 꽃이 피었다고 젊은 사람들이 입으니 이쁘다 해주셨다.
구름 한 점 없이 눈부셔도 맑은 바람이 우리의 걸음을 지치지 않게 독려해주었다.
아침식사는 상다리 부러질 정도의 진수성찬 도시락이었고 점심은 마을 정자에서 양푼에 밥을 비볐다.
퍼질러 앉아 먹는 들밥분위기를 생각하니 양푼비빔밥이 떠올랐다.
먹다남은 나물을 넣은 비빔밥은 아니다.
비빔밥을 위해 별도로 준비한 나물과 생채소, 고추장과 고소한 참기름을 가져갔다. 우린 소중하니까~
청학동 맑은 물소리 들리는 황토집에서 묵으며 자동차 이동을 최소로 하기로 했다.
과제를 위해 청암에서 오래전부터 해먹었다는 대통밥을 저녁식사로 먹었다.
슴슴한 나물들이 어찌나 맛있던지 서비스로 주신 동동주에 나물 한접시까지 더 내주는 훈훈한 인심.
이번여행에서 재첩과 구례의 참게 매운탕까지 세번의 식당 음식이 모두 만족스러웠다.
과제물도 잘 나올듯..
지리산 삼신봉에 오르기.
숨차지않게 땀나지 않게..
온갖 꽃과 나무들에 눈길을 주고 이름을 불러주며 갖은 해찰을 일삼는 달팽이 속도로 오르기.
이건 뭐 산행이 아니고 여행이다, 걍...
삼신봉에서 지리산 능선을 바라보며 오래전 내 발자국을 추억했다.
보이지 않지만 화엄사에서 노고단 쭈~~욱 능선을 따라 천왕봉에 올랐다 대원사로 내려왔던 내 젊은 날.
우리의 차림은 사람들에게 신기하고 즐거운 볼거리가 되었다.
산의 무게를 줄이는 것이 몸빼의 기술이다.
초경량에 완전무방수의 미안함은 속건으로 대신하고 방풍대신 통풍으로 여름산행을 겁없이 할 수 있게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프리사이즈, 강력한 신축성으로 입는 이의 몸에 따라 각각 다른 간지를 자아낸다.
다양한 칼라와 패턴, 그리고 착한 가격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개념 아웃도어 팬츠다.
이런 특장점에 즐거움은 덤이다.
꽃바지부대, 몸빼 마님산악회, 몸빼부대...불러주는 이름도 제각각이다.
함께 사진 찍자는 여성이 있어 우린 초상권 따위 없다며 시원하게 한 컷 함께 했다.
친구들 다섯이 꼭 한번 입고 산행하고 싶단다.
파자마든 몸빼든 꼭 입어보자는 남자들, 동생들 같은데 어디서 왔냐는 여자분, 어디서 샀냐 단체로 맞췄냐 질문도 다양했다.
아무도 안보이는 얼레지 꽃밭 옆 한적한 자리에서 밥을 먹었더니 밥은 먹었냐고 정스런 인사를 해주는 사람들까지 있엇다.
즐거움을 넘어 감동이다 ㅎㅎ
아, 이쁜 사람들이 입으니 몸빼도 이뻐보인다 하는 분도 계셨는데 사실 우리가 이쁘지는 않다.
다만 이쁘게 갖춰입었다고나 할까?
나는 나눠입고 나눠쓰려고 반다나 여덟장, 각종 모자 여덟개를 비롯 멀티스카프에 티셔츠까지 엄청 챙겼다.
"그거 선전하러 왔어요?"
오랫만에 해보는 고어놀이에 어떤분이 물으신다.
"마스터클래스 소개하러 왔나보네~~!!"
잉??!!
"아...음..네. 하지만 몸빼가 고어텍스는 아니에요"
급 고어텍스 마스터클래스 마케팅 모델이 된 우리는 몸빼의 품위를 잃지않는 행동 지속하자며 숨죽여 웃었다.
"우리는 기가도 45분이면 올라가는 거리인데 도대체 뭐하느라 이제 내려왔어요?"
여섯시간만에 내려온 우리의 인증샷을 찍어준 국립공원 직원의 말씀.
올라갈 때도 사진 찍어주시더니...
어떤 할머니도 아침에 올라가더니 이제야 내려오냐며 알은채를...
식당과 매점을 하시는 아주머니도 깜딱 놀라는 여섯 시간.
슬로우 슬로우...거북이도 빠르다. 달팽이 속도가 휴식에 최고.
평사리 들판이, 자동차 도로가, 섬진강 모래밭이며 악양의 녹차밭..하동의 모든 곳이 우리의 여행지가 되었다.
"연초록 실컷 즐겼다"
저절로 중얼거리게 되는 우리의 여행소감.
구례로 넘어와 지인을 만났다.
고창으로 달려와준 답례로 곡성에서 멀지않은 구례로 와주십사 청했다.
뭐...다 섬진강권이니까 구례까지 와줄 만큼은 되리라 생각했다.
맛난 참게 메기 매운탕으로 배부르니 집으로 돌아가겠다 하시는데 그게 아닙지요.
지리산 10경중 하나인 사성암도 모르냐 구박하셨으니 자아~자.. 앞장서시라구요.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좋은 사성암과 오산에서 바라보는 섬진강은 뉘엿뉘엿 해는 넘어가는데 발길이 붙잡았다.
하동여행은 까마득해지고 새롭게 남도의 여행지 한군데를 알 수 있게 된 짧은 시간이 7시간 걸려 돌아오는 길 내내
내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