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허당 둘의 허세스토리
벼르고 벼르던 사량지리를 눈물머금고 포기한 후 사진 한 컷으로 선택한 곳이 고창이다.
몇번째 고창인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내게 설레이는 여행지이고 선운산 산행은 처음이라 기대가 많았다.
민에게 꽃구경과 산행 차림을 각각해서 오라했다.
이번에도 내가 사람들을 낚았다.
고창 청보리밭의 나는 분명 욕심나는 피사체가 될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청보리밭의 분위기를 알고 있었으므로 풍경을 살리는 사람이 되주리라 즐겁게 상상하며 옷을 골랐던 것이다.
청보리의 연초록과 유채꽃 노랑에 어울리는...
역시나...
대포같은 렌즈를 장착한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셔터를 눌러댄다는걸 알고 입꼬리 살짝 올려 이쁜척하며 걸었다.
이른 아침의 청보리밭은 내가 상상하고 연출하는대로 이루어졌다.
어디가 좋은지 알고 척척 서주고 걸어주고...
저리 찍어서 뭐할건가 싶지만 여행중에 이런 놀이도 나름 즐거운 시간이다.
마침내 그들은 우리에게 부탁을 해왔다. 같은 길을 한번만 더 걸어달라고..
뭐..까잇거 예상한 바..
민은 이런일이 처음이라며 신기하고 재밌단다.
나는 뭐 잦은 일이라는...ㅎㅎ
보리밭을 떠나려는데 부탁을 해오는 사람 또 있다.
딸은 말고 엄마만..엄마 옷이 유채밭에 잘어울려서...란다.
이런이런...누가 묻는다 기분이 어땠냐고. 플러스 마이너스 걍 아무렇지 않았다....ㅠ.ㅠ
내가 나이들어 보이는게 아니라 민이 워낙 동안이라고 벅벅 우겨본다.
나도 혼자 여행할 때 누군가 풍경속에 걸어오길 바라던 기억이 많아 선뜻 유채밭을 걸어주었다.
오래전부터 가끔 이렇게해서 받은 사진들이 나를 즐겁게하고 오래오래 추억의 징검다리가 된다.
고창읍성에서도 모델이 되어 달라하더니 그들은 늦어져서 우리끼리 놀았다.
허당 민, 카메라 배러리 충전 빵빵하게 채워서 가져온 카메라엔 메모리 카드가 없었더라는...
"사무실에 두고 왔나봐요"
좋은 카메라라고 칭찬하는 분도 계셨는데..음...음...그냥 소품 혹은 비싼 악세사리 정도 활용하자는데 의견일치,
쭈욱 매고 다녔다.
너 한번 나 한번...내 카메라로서로 열심히 찍었다.
가끔 나도 그러했지만 민은 웬만하면 나를 뽀사시 안개 처리 했더라는...^^
소나무숲이 일품이고 성의 돌담이 예뻐서 고창에 가면 꼭 들르는 곳이다.
계절없이 천천히 한바퀴 돌기 좋은 읍성이다.
새벽 4시에 만나 도시락으로 두 끼를 먹다보니 여행지의 산책은 느긋하다.
음식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이유가 이런 여유가 좋아서이다.
식당 찾고 음식 주문하고 기다리고...난 이게 여행중 낮시간엔 꽤 귀찮게 느껴진다.
모드 전환을 위해 우린 옷을 갈아입었다.
이런거 귀찮아지면 늙는거겠지?
신발은 기본, 옷이며 선그라스까지 일습 산행모드로 바꾸었다.
민은 새벽시간 정확히 와주고 귀찮다 싫다 안하고 따라주니 척척 손발맞아 즐거운 행보가 된다.
경희샘과 셋이 통영을 가기로 했던 날이라 중간중간 경희샘 없음을 아쉬워하다 옷갈아 입을땐 여자 둘이라 편하다했지만..
숨이 막힐만큼 아름다운 선운사 연초록 숲길에 들어서자 다시 경희샘 생각.
민은 홀로 걷는 숲길 사진으로 허세를 부리겠다고 했다. 혼자 산행한 것처럼...
동료가 카카오스토리를 허세 스토리라고 한다나...
맞다고 맞장구를 치고 허세의 기술을 논하고 보리밭과 유채밭의 사진은 허세 떨기 최적일거라며 쩌는 허세 이면에
자리한 숨막히게 쩔어있는 우리들 일상들도 물망에 올랐다.
도솔암까지만 올라다니며 꼭 한번 올라야지 하던 선운산에 올라보니 높지 않아도 좋은 풍경을 보여주었다.
날씨가 좋았으면 낙조까지 즐길 수 있으련만...천마봉에서 낙조대를 바라보며 투덜거릴 때 손전화가 울렸다.
낙조 못보는거 하나도 안아쉬울 일이 생겼다.
허당 둘, 드뎌 낙조대에 올랐다.
어라!! 낙조대가 선운산의 정상 아냐? 아무리 봐도 정상석이 보이지 않는다.
이게 뭔일이지...?
이리저리 살펴도 보이지 않고 물어볼 사람도 없게 산은 한가하고..우린 하산을 시작했다.
뜻하지 않은 약속이 잡혔으니 급히 걸어야한다.
그렇다고 풀꽃들과의 눈맞춤까지 빼먹을 내가 아니다.
허리꺾고 참꽃마리 금란초 반디지치 광대수염들과 노닐며 해찰을 했다.
사람 많이 찾는 여행지에 일찍 도착해 헐렁하게 즐기고 오후엔 사람 떠난 산을 느긋하게 오르니 온종일 사람 부대끼는
일이 없어 좋다.
4~6월 해길어 행락극성수기로 부르는 이 계절엔 이렇게 하루 여행을 하는걸로 정했다.
텅빈 숲을 걸어 나와 아껴둔 선운사에 도착했을 때 나정희님이 마주 걸어오고 있다.
나정희님은 고어카페 이전에 코오롱스포츠의 삼남길 개척단 3기로 처음 만난 길위의 인연이다.
아주 오랫만에 산행이나 같이 할까 했다가 툇짜맞았는데 한가한 사람 아니라면서도 선운사에서 나를 환영해주었다.
크아...타이밍 절묘하다.
둘을 서로 소개하고 인사를 나누게 했다.
산행 잘했냐며 들머리 어디로 잡았냐는데, 우리 그런사람 아니에요. 우린 종주 그런 취향 아니랍니다.
"그런데 낙조대에 왜 정상석 없어요?"
허거덩..선운산 정상은 국사봉이란다. 이런이런...
그래도 선운산에 다녀온걸로 동그라미 칠거야. 선운산 다 봤으니까 모...
"우리 단체 사진 좀 찍어줘요. 그리고 함께도 찍자구요"
"천천히 좀 걷자구요"
진짜 걸음 빠른 나정희님.
에구구구...우린 오늘 넘 많이 걸어서 못따라 가겠다고요.
헐레벌떡 걸어가 주차장에 도착해서는 15분쯤 가야한다고 자동차로 따라오라더니 낯선곳으로 고고씽.
구시포로 방향인데...어디로 가는거지?
갯벌에 우릴 묻을래나? 소금에 절여버릴지도 몰라..
장어를 선운사 앞에서나 먹어봤지 이렇게 바닷가에 가본 적이 없어서리...
장어 못먹는다던 민까지 맛나게 먹을 수 있는 맛난 장어. 탱글탱글한 식감에 느끼하지 않은 맛.
맥주 한 잔 곁들이니 하루 여행에 바닥난 에너지 완전 충전.
쌩유, 나정희님.
< 위의 사진들은 모두 시골장승님 >
갯벌을 걸으며 부른배를 달래주었다.
초면이지만 고어카페가 매개가 되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수다가 가능했다.
커피 한 잔 나누고 일어섰다.
새벽 2시 반에 일어났으니 엄청 졸릴거란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언제 집에 가냐~~??
졸음쉼터마다 들려서 자고 갈지도 모른다고 말했는데 의외로 나의 컨디션이 좋다.
"장어의 힘인가봐. 나 안피곤해"
종알종알 수다를 떨다가 휴게소에 들려 주유를 해야겠다싶어 주머니를 뒤지는데...헐...내 카드!!
커피 마시고 이후에 화장실 다녀오면서 휴대폰에 묻어 나와 떨어진겨. 분실신고를 하려는데..
"왜이케 졸음쉼터도 안나오는거지? 내가 졸려웠으면 어쩔뻔했어!!"
중간에 전화를 해 온 나정희님.
"인정하세요. 나이탓이에요"
뭐 뭐...내 나이가 어때서...?
천안휴게소에서 한시간 조금 넘게 잠들었다가 돌아왔다. 자정이 되었다.
담날 민의 문자. 메모리카드가 가방에 얌전히 있더란다. 푸하하하하...
"그치 그치..나 나이먹어서 그런거 아니지 응??"
< 신우영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