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방산..아쉬운 만족
새벽 출발 습관된 친구 둘과 다섯시 조금 넘어 집을 나선다.
가볍게 차려입은 옷이 딱좋다.
새벽공기에서 겨울보다는 봄냄새가 더 많이 난다.
토요일까지 출근했다던 웅이는 요즘 과중한 업무스트레스에 4시 출발을 다섯시 반으로 미루기까지 했으니
운전은 내가 맡기로 한다.
스트레스로 말할거 같으면 나도 만만치는 않다.
주말에 산에 다녀오며 얻어온 에너지로 기분조절하고 힘겹게 힘겹게 일상을 버티고
그런 일상중에 꿈꾸는 주말이 버거운 일상의 쉼표가 되주곤 한다.
씽씽달려 한번에 평창휴게소에 도착한다.
음식을 주문하고 앉으려다가..
"언니~~!!!"
'꿈많은 아줌마'로 오시는 연실언니닷!! 언니와 나는 얼싸안았다. 이렇게 반가울데가...
언니는 남편과 함께 월정사에 가시는 길, 인사를 드리고 각각 아침밥에 열중모드.
아침밥 먹는 습관이 없어 밥을 부담스러워하는 웅이가 면류를 택하는걸보고 이번엔 미애랑 나도
휴게소 음식을 먹기로 했는데 참으로 안넘어간다.
겨우 된장찌개에 밥 적셔 먹고 둘이 약속한듯 반찬엔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먼저 식사를 끝내신 언니부부가 오대산을 향해 떠나셨다.
헤어지고도 하루종일 반가움에 벌렁거린 기색이 가슴 언저리에 남아 있었다.
계방산은 해발 1,577.4m
단순히 높이로만 보면 어마무지 힘들게 느껴지는 산이다.
운동삼아 가는 것도 아니고 산하고 맞짱 떠 정복해보겠단 생각도 없이 그저 산풍경을 보고 싶은 열망뿐이라
최대한 가볍게 갈 수 있는 산들을 찾던중 우선 순위에 들어온 산이다.
1,059m 높이의 운두령에서 시작할 수 있고 눈꽃이 기막힌 겨울 산행지, 게다가 눈 많이 내렸다고 통제되었던 산인데....
산엔 눈꽃은 커녕 초입엔 얼룩덜룩 눈이 남이있는 정도, 실망이야 정말!!
완만한 능선, 오솔길 오르락내리락하며 걷는 동안 숲은 고요하다.
너무 밋밋한가?
5월 동문산악회 산행을 이곳으로 추천해서 진행중인데 망설임이 컸다.
지난 가을 워낙 격정적인 월출산에 다녀와서 다소 단조롭다 싫어할 수도 있겠다 싶고...
버석한 나무 사이 먼빛으로 산아래며 다른 산들이 보이긴하지만 잎이 무성해지면 그마저 보이지 않을테고..
뭐..걍 산책이라 치지 뭐..
이 숲에 상고대이거나 눈꽃이 활짝이고 푸른하늘이 배경이 되주는 날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워하면서
봉우리 하나에 올라서자 눈과 가슴이 시원해지는 풍경.
좋다 좋아, 아주 시원해!!
가슴시리게 아름다운 산풍경이 눈앞으로 선뜻 다가왔다.
내려올걸 뭐하러 힘들게 올라가냐는 질문을 최근에도 받았다. 물론 농담이셨지만...
내가 산을 찾는것은 끼니때 밥을 찾는 것과 같은 것이다.
먹어도 시간이 지나면 배고픈데 또 다시 한 끼 식사 준비하고 맛있거 찾아다니는 것처럼 아주 단순한...
짜장면이 먹고 싶은 날이 있고, 스테이크가 땡기는 날이 있는 것처럼 동네 뒷산으로 족한 날이 있고 설악산이어야 하는 날이 있고
제철 음식 찾듯 계절에 딱 맞는 산을 찾는 ..오늘은 진수성찬이다.
차츰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걸음이 늦긴하구나.
아니지 단체로 온 사람들이 죽기살기로 정상만을 향해 오르는 것임이 분명하다.
고요하던 산이 갑자기 왁자지껄 해지더니 더이상 산이 한적하지 않았고 끊임없는 사람의 행렬이 이어진다.
전망대에 오르니 오대산 비로봉이며 설악산까지 보인다.
아..이래서 조망이 좋은 산이라고 했구나.
수월하게 계방산 정상에 올랐다.
크아...정상석 인증샷은 대충 찍고 비켜줘야한다.
그나마 우리가 일찍 출발해서 많이 기다리지 않았지 내려와 몇 컷 산풍경 찍고 보니 길게 줄이 늘어서있다.
사방 툭 트여 선자령까지 다보이고...정말 시원한 경치다.
연두빛 나풀되는 오월에도 충분히 아름다울테고 갖가지 풀꽃들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단지...눈꽃..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다.
정상에서만 약간의 바람이 불었지 참으로 포근해서 눈이 녹기 시작하는 봄날이다.
사람들 피해 좋은 자리 맡아 점심상을 차리니 좋은 자리 맡았다고 지나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한다.
그럼요. 우리가 귀하게 자라서 아무데서나 밥 안먹거든요!! 물론 우리끼리 하는 얘기 낄낄..
따끈한 누룽지가 점심, 아후 고소해.
과일과 핫쵸코 커피..주식보다 디저트가 더 많은 점심상이다.
밥을 먹고 나더니 웅이는 손이 시려워 걸음이 빨리하지만 사람이 사람이..빨리 걸을 수도 없다.
대체 관광버스가 몇 대나 왔으려나. 올라오는 사람들이 말도 못하게 이어지고 헉헉 가뿐숨에 술냄새가 진동한다.
그리 번다한 중에 뽕짝뽕짝 찌렁찌렁 음악소리 자랑하는 절대무식자 있으니..
"아저씨 음악소리가 너무 커요!!"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하지 않으면 내 소리가 묻혀버릴터였다.
"아무도 시끄럽다 않했는데 당신이 처음이요. 좋다는 사람 많은데..."
"누가 좋대요? 음악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인데 혼자 들으셔야지 산에서 너무 시끄럽잖아요? 자연의 소리가 안들려요"
나는 맘껏 목청을 높였고 음악소리는 잦아들었다.
음악의 장르 문제가 아니다.
아마 내가 좋아하는 노래였더라도 나는 그정도 데시빌에는 반드시 한마디 했을 것이다.
오후시간에 접어들자 숲은 아침에 우리가 오르던 상태로 고요해졌다.
손시리고 담배급한 웅이는 급한 걸음을 걷고 미애와 나는 조근조근 수다를 나눴다.
맑은 공기만큼이나 맑게 우리 속내를 비추는 애기들이었다.
"우리나이 70 쯤 되면 지금 이렇게 지낸 얘기들 하겠지?"
"그렇겠지. 힘있을 때 크고 높은산 다녀두자고. 야산은 이담에 다니구..옛날 얘기만 곱씹으면 그것도 물려.
계속 뭔가를 함께하면서 에너지를 채워가며 추억도 해야하는거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