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악산
"산에 다녀서 외로울 사이가 없는데..."
집에 있으면 밥 챙겨주기 싫다고, 애들 공부 방해한다고
아내가 도시락 싸주며 산에 가라고 내보낸단다.
"나는 외로워서 산에 다니는 것 같은데 누나도 외로워서 산에 다니세요?"
1초도 생각할 것 없는 내 대답이 이러했다.
감성이 메마른 사람은 아니지만 감상에 휘둘리는 사람도 아닌게 나인가보다.
호랭이 담배피던 시절쯤이었을게다.
아름다운 운악의 풍경이 완전 새로운걸보면...
늘 화현면에서 시작해 원점산행하다
일요일엔 가평에서 원점산행을 해봤다.
그때 운악산은 이 무지막지 가파른 철사다리와
어느순간 맞닥뜨린 절벽과 알바, 의도한 바 없이 대원사로 내려온
기억이 전부이니 그땐 젊은나이라 풍경을 보기보다
내가 정상에 오른 산 하나 더 보태는데만 생각이 닿아있던게 분명하다.
한참을 걸어올라가도 탁 트이는 풍경이 없어 답답했다.
경사가 7~80도는 되겠다 싶은 된비알을 올라쳐도 맞춤하게 시원한 조망도 없다.
가파르고 험한데 혼자 왔냐고 참견하는 사람이 있다.
슬슬 피한다.
음악소리가 귀에 거슬려서다.
험준해도 이런 장치로 인해 산은 안전하다.
꼴랑 사진 한 장 만큼의 풍경이 있는가하면
꼴랑 사진 한 컷으로는 담을 수 없는 풍경이 너무 많다.
병풍바위가 그랬다.
아...이건 모두 직접 와서 봐야한다구.
이 장엄함을 어찌 내 똑딱이에 담겠어.
미륵바위
구름 감쌓인 사진 한 컷이 나를 이리 오게 만들더니 실망시키지 않았다.
아름다운 풍경에서 절대자를 느낀다.
사람은 절대 못해..암..신의 영역이야.
꾸준히 쉬지않고 같은 속도로 걸었다.
숨차지도 않고 힘겹지도 않았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해서 걸을 수 있는 시간, 체력소모가 훨씬 적다.
게을러서도 혼자가 좋다.
타인을 배려한다는 것은 몸과 마음 시간, 모두 바삐 쪼개 쓴다는 뜻이다.
혼자일 때, 나는 충분히 자기중심적일 수 있어 좋다.
느린걸음으로 힘들것 없이 걸어 2시간 40여분만에 정상에 도착했다.
갈증이 심한날.
얼음물도 없이 왔더니 아이스크림이 어찌나 먹고 싶던지...
하지만 난 땡전도 없는 상태.
주차비 1000원도 낼 수 없어 그냥 들어가라 해줬으니...
아저씨 아이스크림 카드는 안되나요?
물을 수도 없고...식탁위에 꺼내놓고 그냥 온 현금이 이렇게 아쉬울줄이야.
조용한 의자가 있어 도시락 까먹고 커피 마시고 앉아 쉬었다.
현등사로 방향을 잡아 가파른 길을 내려서자 현등사다.
경내를 한바퀴 돌아보고 계곡을 따라 하산을 했다.
이틀간 내린 폭우에 수량이 많아 장쾌한 물줄기가 시원하다.
잠간 탁족도 하고...
5시간 30분만에 내려왔다.
특별히 행복한 시간이었다.
가끔 이렇게 혼자 산행을 하고 돌아오면 벅차게 기쁜 마음이 오래간다.
답사라는 탈을 썼지만 혼자 천천히 걷고 싶었다.
꾹꾹 눌러 담은 사진은 많아도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훨씬 나을거라
살짝 맛뵈기만 올렸다.
운악산은 포천쪽에서 한바퀴, 가평쪽에서 한바퀴 돌아주면
좋은 풍경 놓치지 않고 같은길 걷지 않는 원점산행이 되어서 아주 좋다.
6시에 출발하면 운해를 볼 수 있을텐데...
서슬퍼런 바위들을 감싸는 부드러운 솜이불 풍경
새로 날을 잡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