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틈여행 2012. 6. 27. 11:47

"친구들이 나이가 많아져서 꽃도 많이 들어요"

각각의 장미 다섯단을 계산대에 올렸다. 올해, 우리 나이가 꽉찬 장미 다섯 단이다.

꽃집 쥔장 난숙씨가 말도 안되는 꽃값을 부른다. 늘 선물만 많이 한다고 꽃값을 아주 적게 받았다.

가끔 난숙씨 남편도 남자한테 꽃도 못받는다고 놀리며 내게 꽃을 안겨주시곤 한다.

난숙씨 부부의 따뜻한 마음을 받는 날이면 나의 얼굴엔 장미 뺨치는 꽃색이 돌아 급 예뻐져 있을터였다.

 

 

 

 

창포원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는 미애는 한 쪽 팔엔 카디건을 걸치고, 남편이 미리 생일선물로 줬다던

상품권으로 장만했을 살랑살랑 예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Happy Birthday to You~~♬"

"응 고마워"

생일파티를 위해 예약해둔 중식당으로 가는 길에 내가 생일 선물로 뭘 준비했음 좋을거 같냐고 물었다.

"이렇게 이벤트를 마련해주는데 무슨 다른 선물이 필요해. 오늘 이 약속 없었으면 무척 우울했을거야"

시어머님은 한 달간 미쿡 여행 가셨고, 남편은 묘하게 생일 때마다 직장일로 바쁘고 아들 딸도 일과

공부로 늦는단다. 해마다 며칠 전인 남편생일을 기준으로 주말에 시누이 식구들 불러 밥먹고 정작 미애

생일 당일엔 가족들과 무얼 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말을 듣고 준비를 한거다.

육류 좋아하는 미애언니가 갈비라도 재 온 줄 알면 어떻하냐는 재형이 걱정에 오이소박이 통에 메모를

붙이고 꽃이 어울릴 긴 꽃병에도 메모를 붙였다.

 

 

 

 

 

 

작은 방에서 맛있는 요리를 쏙쏙 골라먹으며 연태고량주를 홀짝 거렸다.

다른 고량주에 비해 알콜이 낮고 향이 아주 좋아 목넘김이 부드러운..그래봐야 나는 꼴랑 두 잔이다.

오품냉채 전가복 해물누룽지 깐풍새우 등등과 함께 우리들의 지나간 생일이 맛있는 안주가 되었다.

스물다섯에 결혼한 미애는 신혼 초 얼마간 시조부모님, 시부모님, 시누이 둘과 함께 살았다.

층층시하인데다 남편 생일이 사나흘 앞이고 얼굴도 모르는 시어른 기일이 생일날이라 늘 제사

음식준비를 했었단다. 첫 생일조차 챙겨받지 못해서 친정머머니가 많이 속상해 하시기도 하고..

남편은 미리 상품권으로 선물 대신해왔지만 정작 당일에 아무 일도 없음이 서운해 어느해 생일엔

밖에서 엄청 투정을 부려보기도 했단다.

생일날은 물론 생일 앞뒷날 대부분 친구들과 많은 시간도 보내왔다니..

"그럼 뭐 생일 선물도 받고 할거 다한거네 뭐~~"

 

글쎄 나는 가장 기억에 남는 생일이 재작년. 정말정말 내 생일엔 관심도 없을 분 같았는데 아침에

전화를 주셨다. 사실 내가 생일주간이네 뭐네하고, 남들의 생일 챙기는 것에 비해 내 생일을 기억하는

주변인은 많지 않아서 너무 놀라고 기뻤다. 어떻게 찾아내셨을까 짐작이 가서 더더욱.. 하루종일

설레고 좋아 갖고 싶은 많은 것들을 썼다지웠다 하다가 '나중에 맛있는거 사주세요' 하는 소심문자만

보내고 오늘날까지 아쉬워하고 있다는...ㅎㅎ

"그날이 내 기억에 가장 행복한 생일이고 내 인생 최고 아쉬운 날이야"

 

시누이들의 축하메시지도 못받았다고 서운해하지만 그런 시누이들을 이해하는 마음도 컸다.

친정엄마보다 오히려 시어머니가 편하다는 미애는 어머니가 안계시니 집안일을 다 해야되서

노는 시간이 줄고 더 바쁘다고 어머니 오시고 남편 출장가면 신나게 놀아야겠단다.

어머니가 준비해놓고 가신 반찬들도 거의 떨어져 가는데 오이소박이를 선물로 줘서 너무 좋다하니

준비한 내마음이 더더욱 흔연한 생일파티였다.

미애 딸래미가 꽃을 꽂아 엄마 꽃선물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 센쑤. 아마  이번 생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 생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금요일 생일파티를 하고 토요일에 만나서는 산에 가서 놀고 일요일엔 우리집으로 미애가 왔다.

일 때문에 나왔다는 미애에게 '반찬 별거 없슴, 청소상태불량, 고기 없슴' 이렇게 문자를 보내놓고

밥상을 차렸다. 아욱국에 깻잎 한봉지도 양념에 재어두었고 오이소박이와 피클도 있겠다, 마침 불려

놓았던 찰밥에 불을 당긴참이라  선뜻 밥먹으러 오라 청할 수 있었다. 쉬는 날인데 방해한거 아니냐며

와인 한 병과 내가  사오라한 두부를 들고 들어왔다. 허겁지겁 뚝딱 밥 한공기 비우고 누룽지까지

끓여먹었다. 과일과 커피, 우린 거의 몸이 뒤로 제껴질 지경이 되었다. 이럴땐 수다로 체력을 소모해

줘야 소화가 잘된다.

 

일찍 결혼한 미애 집에 나는 자주 드나들었다. 재형이에게 물어봐도 가물가물 하다던데 우리가 시부모님

모시고 사는 집에 함께 가기도 했었단다. 남의 시어머니여서 그랬을거고 눈치없고 철없어서도 그랬을게다.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살갑게 할 수 있었음은.. 미애 시어머님은 맑고 고운 목소리만큼 상냥하시고

예쁘셨다. 나는 미애 시어머님과 시누이들이 주측이 된 계 팀에 들어가 계를 부어 보름간의 영국 여행비를

마련하기도 했다. 아..정말 옛날 얘기다. 운전면허 시험을 보러가는 날에 내 아이를 맡기고 갔었고 언젠가는

시어머님께서 아이들을 봐주셔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1박으로 정동진과 치악산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울사무실 동료들과 제주도 여행을 갈 때 미애가 함께 가기도 했다. 미애는 나보다 섬세하게 기억하는게

많았다.

"내 기억의 상당 부분이 소실되있는걸 알았어"

"소실이 아니라 묻혀있었던거지"

 

커피 한 잔을 더 내려 마시며 아주 오랜 시절로 돌아가 각각 우리의 유년을 추억했다.

미애는 아버지께 방랑기가 있었던지 몇 년간 부재중이셨고 엄마 혼자 살림을 꾸려나가시던 시절을

얘기했다. 어느날 일을 마치고 피곤해서 아이들에게 짜증이 나던날, 엄마가 많이 힘드셨겠구나 생각이

났단다. 난 술 좋아하셔서 가끔 병가를 내시던 아버지께 투덜거리며 흑임자죽을 끓이시던 엄마 얘기를 했다.

아버지 혼자 벌어 외할아버지 모시며 여러 남매 키우시던 우리집이나 미애집이나 살림살이가 크게 다르지

않았을거다. 친척집에서 옷을 가져와 옷자랑 삼아 하루 두세번 옷을 갈아입었다는 미애는 먹을 것은 늘

풍족하지 못했다하고, 나는 풍족한 먹거리에 가끔 값비싼 화분은 사셔도 무슨 때 아니면 옷을 사주시지 않는 엄마가 불만이었다고 했다. 물론 엄마는 이럴때 아주 좋은 옷으로 장만해주시기는 했지만...

대부분 사람은 결핍된 부분을 채우려 하는 심리가 있어서 미애는 맛있는거 먹고, 특히 하루 한 끼 고기는 먹어야 한대고 ^^ 나는 먹는 것, 여행하는 것보다  좋은 옷, 예쁜 옷에 더 환장하는 어른이 되었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많이 예뻐해주셨다며 78세에 인정받으시는 직장인으로 부모님과 자주 함께 시간을 갖지 못해서

아쉽다는 미애, 오래도록 효도 할 수 있도록 두 분이 건강하셨음 좋겠다.

 

나는 경제적으로는 궁핍했지만 정서적으로는 풍요로웠던 유년이었다 하고 미애는 둘 다 궁핍했다 하고..

그러함에도 우리가 건강한 어른이 된 것이 참 좋았다. 유년 구석구석 배어있는 부끄러움과  나름의 아픔을 

무덤덤 추억 할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지...유년시절의 결핍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요즘 유행처럼 쓰여지는 트라우마, 우리도 그 안에서 허우적허우적 비틀리고 꼬인 어른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수다에 마무리는 늘 20년 후 추억할 수 있도록 건조한 일상에 약간의 윤기를 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실행해보자는 얘기로 한다.

울집 앞에 맛있는 짜장면 집이 있다. 푸성귀 점심을 먹었으니 하루 한 끼는 육류, 해물쟁반짬뽕과 탕슉으로

맛있게 하루를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