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수니 일기2

내 생애 최고의 크리스마스

틈틈여행 2011. 12. 25. 22:11

임마꿀랏따 수녀님.

커다란 카레 솥단지 같다는 인도에서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몹시 궁금하시져?

이곳 제천 보나벤뚜라 노인요양원엔 19일에 내려왔어요.

지난달에 있던 내 축일에 마누엘라 수녀님께서 축하와 함께 내려 오는 날짜를 미리 알려 달라시더니

집 전체를 따뜻하게 덥혀놓으셨더라구요.

왜 아시잖아요.  방 셋, 욕실 셋, 주방에 거실까지 독채..난 이 집 열쇠를 쥐게 된거에요.

어르신들 보살피고 사용하라고 손세정제에 바디로숀, 헤어밴드, 덧신, 춥다고 스카프도 챙겨주시고

장갑 안가져온줄 아셨는지 장갑까지..아후 마슈님의 디테일함이란 늘 경이로워요.

냉장고엔 가득 간식거리를 준비해놓으셨더라구요.

아이쿠야..다이어트는 다 텄구나. 그래 모든 새로운 계획은 새해에 시작하는거니까 뭐..

1월 1일 신년 미사 드리고 올라갈거니까 그날 저녁부터 다이어트 하자 맘먹었죠.

냉장고에 뭐를 채워주셨나 보시렵니까?

 

 

 

수녀님이 기도 함께 하시겠냐길래 수녀님들과 똑같이 생활하겠다 하고 저녁기도와 묵상, 아침 6시 반에

시작되는 아침기도와 묵상, 아침 저녁 미사에 함께하고 있어요. 완전 수녀님들 껌딱지.

첫날은 그냥 쉬라시는데 저녁식사 봉사를 하겠다 나섰어요.

저 울었잖아요. 어쩜 그리도 울엄마랑 닮으신 할머니가 계시던지요.

어르신들이 처음보는 선생님이라며  언제 갈거냐고 물으시기도 하고..

앞을 못보시는 할머니와 옆에서 꼭 함께 다니시며 도와주시는 할머니의 굽은 뒤모습에서도 두 분의

진한 우정이 느껴져 코끝이 찡했어요.

 

둘째날부터 본격적인 활동시작, 제일 먼저 선물 포장에 투입되었어요.

미리 받고 싶은 선물 목록을 작성해서 준비해다 놓으셨는데 철저한 준비에 놀라고 어르신들이 원하시는

선물의 다양성에 놀라고 품목의 귀여움에 즐거웠답니다.

동화책, 사탕, 베지밀, 어깨 덮는거, 무릎 덮는거,로숀, 양말, 덧버선, 티셔츠, 파스, 머리띠에 금반지까지..

선물에 맞는 이름표를 올려 정리하고 포장 시작.  

대충하지 말고 천천히 해도 되니까 정성껏 이쁘게 하라는 원장 마슈님 말씀.

마슈님의 꼼꼼함은 익히 아시져?

그렇게 포장을 마친 선물에 카드 붙이기, 글자를 아시는 분들께는 손글씨로 정성담아 축하 메시지를 적고

인지능력이 없으신 분들께는 단체 카드로 하나하나 붙였어요.

 

 

 

 

 

 

마무리까지는 못했어요.

도밍고 신부님, 안드레아 학사님이 오셔서 마슈님과 밖에서 식사했거든요.

슈님이 엄청 부려먹을거라고 영양보충해야 한다고 과식시키셨어요.

산행이며 노화로 인한 건망증을 주제로 부드러운 식사시간이었다고 슈님이 좋아하셨어요.

서먹한 분위기로 식사하게 될까봐 걱정 하셨었나봐요.

어르신들 식사봉사하고 제천 시내 성당에 미사 드리러 다녀왔어요.

 

셋째날..기도하고 약간 눈이 내린 미끄러운 길을 달려 베론까지 가서 미사하고 왔어요.

음...봉쇄수도원의 수녀님들이 저 안쪽에서 성가를 부르시니 새로운 경험이었답니다.

아침식사후 눈을 치우는데 난 슬쩍 빠졌어요. 넘 피곤해서..

그렇게 쉬길 잘했지 정말 바쁜 하루를 보낸 날이에요.

저녁엔 내가 렌즈를 끼고 있나 할 정도로 눈이 따가워서 뜨지도 못할 정도로 센터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유꾸미기와 성탄 트리 만드는 일에 참여했어요.

지난해 정리해놓은 상자들만 봐도 대단한..종류별로 색깔별로 구역별로 정리된 상자들을 꺼내는 것만도

한참걸렸으니 얼마나 일이 많았겠어요.

물론 물 만난 고기처럼 나는 신이 났지요. 좋아해서 잘하는 것이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내가 모던하우스에서 트리용품을 조금 준비해갔는데 마슈님이 내게 중심이 되는 트리를 만들도록 전격적으로 허락해주셨어요.

화려해도 괜찮냐 물으니 이번엔 예수님도 제천에서 강남발 받으시게 해드리면 된다시며 구유며 꽃꽂이 작은 트리도 내가 만드는 성탄트리를 기준으로 하시겠다니 얼마나 신났겠어요.

거의 모든 구역의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니며 장식을 하느라 녹초가 된 하루, 거들기만 한 내가 이럴진대

 슈님들은 오죽 피곤하셨을까요.

아주 조금 우리의 손길을 보여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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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날,

테이블 런너를 일체 성탄절 분위기로 바꾸고

아기예수님 이불 하나를 만들라는 명을 받잡고 글라라슈님과 머리를 맞대고 손바느질을 했어요.

아무래도 예뻐서 하나 더 만들라고 하실것 같아 아예 두 장을 만들고 앙징맞은 베개도 만들었지요.

글라라슈님과 마주 보고 우리가 너무 잘 만들었다고 감탄을 했는데 원장수녀님 역시 만족만족 대만족은

물론이었죠. 솜손이 마슈님을 큰이모처럼 소녀 감성을 지닌 귀엽고 깜찍한 수녀님이라 칭하는 이유가

요런점 아니겠어요?

 

오후엔 마슈님이 만들라고 과제를 내준신게 있는데 엉뚱한 일을 하기로 했어요.

사회복지사랑 물리치료사들이 준비하는 어르신들 율동복을 내가 만들어주겠다 나선거지요.

디자인은 골랐다는데 아무래도 내가 해야겠어서...내가 겸손을 못해서 뭐든 나서기잖아요.

저녁기도후엔 제천시내 성당으로 미사드리러 갔었어요.

 

 

 

 

다섯째날...마슈님 전화 받고 헐레벌떡 미사 드리러 3층 성당으로 올라갔어요.

너무 바쁘신 나머지 새벽미사 시간을 알려줬다고 생각하셨나봐요.

내가 고해성사를 하기로 한 중요한 날인데 너무 숨차게 아주 오랫만인 고해성사를 하게 되었다는..

이날 미사는  마슈님이 연미사 넣어주셨어요. 미리 내게 그러해도 되겠냐 조심스레 물으셨는데 넘넘

감사하다고 당연히 좋다고 했어요. 그냥 무조건 내게 잘해주고 싶다셔요. 마슈님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아침먹고 청소시간에 모두들 눈을 치우는데 빨래했어요.

세탁실에 가서 세탁기 돌리라 하시지만 세탁 담당 직원의 일을 방해할 것 같아 손빨래를 해요.

진정으로 수도자 체험하는 기분이랄까?

욕실에 조금이라도 훈기를 준비하고 샤워하느라 따뜻한 물로 먼저 빨래를 하는거에요.

구석구석 돌아다녀본 결과 내가 쓰고 있는 방 욕실이 가장 춥다는...큰방 쓰고 있거든요.

마슈님은 바쁜 이틀 보냈으니 쉬엄쉬엄 꽃꽂는데서 놀으라시는데 어르신들 율동복 만들기가  덜 끝나서

바느질 방에 있었더니 글라슈님이 찾으러 오시고 막달레나슈님이 커피와 간식 가져다주시고...

막달레나 슈님은 내가 1일날 떠난다니 벌써 서운하다는거에요. 내가 여기 식구같다는 분도 계시고..

아! 이넘의 인기는 증말..

내가 바느질을 마치고 슈님들의 꽃꽂이도 다 끝났을 때는 점심 식사 시간이 되었더라구요.

 

 

 

 

 

 

 

오후에 일부 슈님들은 원주 본원으로 성사보러 가시며 함께가자 하셨는데 바쁘다고 사양했어요.

시내에 나가려구요.

마슈님 축일 선물이랑 내가 마실 커피를 사서 돌아오니 마침 재형이가 보낸 택배가 와있었어요.

장식을 좀 부탁했거든요.

일부는 집안에서 준비했지만 밖에 하는 장식이다보니 장갑을 끼고 해도 손끝이 시려왔어요.

볼이랑 리본 구슬줄로 뭘했는지 보실래요? 볼이 쉬흔개였음 좋았을걸 서른개라 마이 아쉬워요.

슈님들 아침에야 보신 반응 대박!!

 

 

 

재형이가 소미아빠랑 저녁식사를 하고 떠났는데 눈이 많이 와서 차가 꼼짝도 못한다는거에요.

기도 끝나고 피곤해서 누웠는데 걱정이 되서 잠은 안들고...

그러다 깜빡 잠들었는데 왔다는 전화, 한밤중 2시, 문을 열고 나가보니 사락사락 눈이 내리고 있어요.

소은이가 내 방에서 자는데 우린 서로 잠이 쉬 들지않아 늦게야 잠들었어요.

세 모녀는 자고 나만 혼자 아침기도와 묵상을 했지요.

벌써 두 번 눈 치운 날이 있는데 한번도 못나갔으니 재형이와 서둘러 아침밥을 먹고 눈치우는 대열에 합류,

정말 오랫만에 눈을 치워보는거라 우린 신나게 몰아부쳤어요.

모든 슈님들과 직원들 대부분이 함께 진입로의 눈까지 싹싹 밀어낼 때 흉내는 조금 냈어요.

 

 

 

 

어르신들 성탄절 잔치해드리느라 바쁜 오전이었어요.

보호자가족들도 초대되어 함께 했지요.

어르신들 수녀님들 부서별 직원들이 틈틈이 갈고 닦은 실력으로 공연을 했는데 재형이랑 둘이 좀 짜증이

난게 초대된 가족들이요, 어쩜 그리 리액션이 야박스럽던지...

자식들이 공연을 했다면 그렇지 않았겠지 싶은게 화가나서 더 열심히 박수를 보냈어요.

자기들 부모님 보살펴 주시는 분들인데 힘 되시라 아낌없는 환호 좀 해주면 안되는건지 원..

 

 

 

 

수염난 산타 할머니 보실래요?

산타 때문에 고민이시길래 내가 하겠다고 이번에도 나서기 정신으로다...

요즘 배가 나와서 산타가 어울릴거라는 재형이 반응이 있어서 일부러 허리를 더 졸라맨 산타가 되었어요.

소미 소은이는 수녀님과 함께 주머니에 열심히 선물 담아 나르는 일을 맡았어요.

산타 간지 제법이죠? 인기 최고였다는...나만의 생각인가?

손을 잡고 놓지 않는 어르신, 빨리 선물달라 보채는 어르신, 어떤 가족은 아기랑 사진 한 컷 찍어달라 해서

흔쾌히 포즈를 취해줬지요.

사실 쉽지는 않았어요. 수염이 코를 막았고 가느다란 털들이 입으로 자꾸 들어와서 숨 차 듀글뻔 했다는..ㅋ

점심은 보호자 가족들과 다함께 뷔페식으로 했어요.

우린 배고픈데다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과식하기로 작정하고 먹었어요.

그렇잖아도 요하니따 슈님이 너무 먹이시는데...정말 그 슈님은 식고문을 하세요.

물론 우린 그 식고문을 아주 즐기는 편이지만요.

 

 

 

 

오후엔 늘어지게 한잠 잤어요.

그러고 나가보니 수녀님들은 제대 꾸미고 미사후 있을 파티 준비를 하시고 일을 많이 하셨더라구요.

저녁식사하시는거 돌봐드리고 저녁먹고 저녁기도 자유라셔서 빼먹었어요.

미사는 일찍 시작했어요.

아무래도 어르신들 일찍 주무셔야하니까 그런듯..7시 반이었거든요.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곱게 한복을 차려입으시고 예쁜 꽃가방에 꽃색 머리띠를 하시고 오셨어요.

할아버지 신부님은 어르신들 듣기 편한 어휘로 강론을 하셨는데 나도 그런 편한 강론이 좋았어요.

우린 서툰대로 휠체어 타신 어르신들의 아기예수님 경배를 도와드리고 미사 후 방으로 돌아가시는 일도

함께 거들고 식당에 모였어요.

저녁을 굶길 잘했지, 예수님 탄생과 마슈님 축일을 기념하는 자리라 늦은 시간이지만 또 엄청 먹었어요.

안먹으면 슈님들이 자꾸 신경쓰실까봐 맛잇게 많이..

소은이는 쿠키를 구워왔고 재형이는 카드(과일과 성탄트리는 미리 드렸고요) 나도 준비한 선물을 드렸어요.

 

오늘은 아침밥도 굶은채 늦도록 잠을 잤어요.

10시 30분 미사였거든요.

어르신들은 오늘도 역시 곱게 한복으로 차려입으셨어요.

우린 미사를 하고 신부님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어요.

마슈님이 친동생이라 소개를 하시는데 눈치없는 소은, 이모수녀님은 아니라며...신부님 잠시 헷갈리심.

데레사슈님 수산나슈님이 점심에 오셨어요.

난 주방일을 거들고 재형이는 인사드리고 차 밀릴까봐 일찍 떠났어요.

테이블에 성탄 카드 석 장을 두고 말이지요.

애들은 마슈님 너무 좋다고 헤벌쭉하고 요하니따 슈님은 애들 먹이라고 음식을 좀 챙겨주셨어요.

요하니따슈님이 솜손 엄청 이뻐라 하시는거 아시져?

세탁실에서 빨래도 돌리고 잠시 쉬었다가 요하니따 슈님께 일거리를 달라해서 주방으로 갔어요.

손님맞이와 어르신 저녁식사가 겹치니 엄청 바쁠 수 밖에요.

두어시간 정신없이 설거지에 행주빨기, 음식담기등 바빴어요.

내 생전에 두부썰기에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본적이 없네요. 혹시 음식 망칠까봐 ..

각처의 슈님들이 3층에서 전례행사를 마치고 내려오신 시간에 모든 셋팅이 끝나고 저녁식사는 슈님들과

함께 했어요. 마슈님과 요하니따슈님이 몸살나면 어쩌냐고 걱정이시지만 이 정도야 뭐~~~.

 

임마꿀랏따 수녀님...

성탄절이 없는 곳, 달력이 없는 나라에 가고 싶었는데 성탄절 깊숙한 곳에 있다보니 바삐 몸놀려 기쁨을

만들어내고 그 기쁨으로 뾰족한 슬픔과 아픔을 다독여  최고의 성탄절을 보내게 되었어요.

언젠가 슈님이 피하는 것보다 그안으로 들어가는게 낫다는 말씀이 옳았어요.

이런시간을 보낼 수 있음은 언니가 슈님이라 많은 좋은 점 중 쵝오였다고나 할까?

마뉴엘라 수녀님이 해마다 오라시는데 좋아서 어쩌죠?

밥을 하도 잘 먹여주셔서(밥, 하지도 않고 잘먹고 설거지도 안하니) 밥값하기가 벅차겠지만 뭐..

만인이 원하다는데야  어쩌겠어요.

물리치료사 지혜샘이랑 사회복지사 민희 샘도 내년에 또 와달라 했거든요. 내가 율동복 만들어준 것 땜시...

이것보세요, 연령고하를 막론하고 이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