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만큼 여행하기2

두근두근 지리산

틈틈여행 2011. 11. 13. 23:35

"생일주간인데 선물 하나 주세요. 오늘이 제 생일이라구요, 뭐.."

생일선물로 이틀 휴가를 받았다. 결근을 허락받았다는게 정확하지만...

결근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제는 다 안다.

 

 

 

 

 

 

한살림 챙겨 아침 일찍 떠났다.

계획보다 빨리 도착해 한시간 가량 생긴 여유시간에  괜히 남의 동네에서 해찰을 해본다.

 

 

 

 

 

 

배는 고픈데 식욕은 없다.

지리산이 품고있는 마을 이름과 지리산 이정표에 두근두근 벌렁벌렁 가슴이 방망이질을 해댄다.

천왕봉에 올라보겠다 맘먹고부터 있어온 증상이 최고조에 달한 것.

생각만으로도 설레이고 벅차서 두근두근, 겁나고 두려워서 두근두근..

 

 

 

 

 

암튼 같은 국립공원인데 출현하는 동물부터

우리동네 국립공원 북한산과는 사뭇 다르니

두근두근 무서울 밖에.

울동네는 기껏해야 멧돼지가 출현한다고

마주쳤을 때 어찌어찌하라는 친절한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곳은 곰과 마주칠 수 있다는, 너무 간단해서

더 위협적인..

그래, 마주치면 죽은척하는게 상책인갑다.

아니지, 탐방로만 벗어나지 않으면 되는거지!!

 

 

 

 

 

 

시작은 수월하다.

중산리는 천왕봉에 가장 짧게 가는 코스다.

게다가 법계사행 버스를 타고 순두류까지

올라간다.

나의 고급하지 못한 체력에는 그것도 벅차다.

두번이나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하산을 해봐서

그 지리지리함을 아는지라 버스 이동시간이

너무너무 행복했다.

올라가라, 쭉쭉 올라가라.

멈추지말고 천왕봉까지 내쳐 올라갔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 들 정도로 자꾸만 지리산에

겁이 난다.

 

 

 

 

구름이 살짝 걸쳐진 저 봉우리가 천왕봉이다.

중턱까지 버스로 올라섰다고 쉽게 봐지지도 않고, 빠~안히 올려다 보인다고 절대절대 만만한게 느껴지지

않는, 무섭고 두렵고 설레이는 봉우리이다.

 

 

 

 

 

 

 

순두류에서 로타리대피소까지는 2.4km. 바로 위 법계사에서 떠오는 물은 먹는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다. 화장실은 용변 전용, 세면대도 없다. 몰래 양치하고 세수는 물수건에 크린싱 폼 묻혀 닦고, 뜨거운 물로

수건 적셔 스팀타올로 마무리.

생일주간이니 라면 먹을 수 없고 햇반을 사서 준비해 간 양탕과 추어탕에 김치 곁들여 먹었다. 과일과 커피로 입가심, 설거지는 뜨거운 물로 살짝 헹궈 휴지로 닦고 모든 쓰레기는 되가져 온다. 대피소는 8시에 소등을 한다. 남자는 1층, 여자는 다락2층. 여기저기 코고는 소리에 귀마개를 하고도 깊은 잠은 못잤다.

 

 

 

 

 

 

 

 

 

새벽 4시 30분.

일출을 보기위해 일어나 출발해야하는 시간이다.

사람 마음 다 같아서 여기저기서 부시럭부시럭

일어나 채비하는 소리가 들린다.

걸음 느린 나는 일출을 보려면 남들보다 더 서둘러야 할 판이다.

헉...그런데 웬걸.

밖에 나가보니 가늘게 비가 내린다.

비에 대한 준비도 일습 해갔지만 참 심난하다.

커피와 빵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다시 누워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6시 30분 쯤에 느긋하게

출발을 했다.

다행히 비는 거의 그쳐가고 있다.

 

 

 

 

 

 

 

 

 

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는 2km.

부실한 아침식사로 급격히 체력이 떨어져 버거운 산행이다.

빵과 과일을 먹었지만 크게 힘이 나지는 않는다.

산행 전에 든든하게 밥을 먹고 1시간 쯤 지나야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는데...

천왕샘이다. 정상이 멀지 않다.

바람이 거세어질 것에 대비해 옷을 바꿔 입는다.

 

 

 

 

 

                          

천왕봉 정상이다!! 22년만에 오르는...

내가 원하는 풍경은 온데간데 없고 바람과 구름만 가득한 정상이지만 다시 천왕봉에 오른 감격은

지리산 전체를 덮고도 남을 만큼의 크기다.

최근 15년 동안 1000m를 넘는 산이라곤 고작 지난해 여름에 명지산에 오른게 전부였으니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감흥은 비할데가 없음이 당연하다. 

더이상 안된다고 야산만 다니며 극도로 소심해졌던 나는 얼마 전 설악산행도 포기했었다.

아..나도 아직 꽤 쓸만하구나. 1915m에 올라왔다구.

 

 

                                                                     

                                                     

                                       

 

 

 

 

 

89년 8월과 89년 12월에 천왕봉에 올랐었다.

화엄사를 들머리로해서 중산리로 내려오는 종주코스를 선택했던 88년의 여름산행은 함께한 열 명

모두에게 진한 기억으로 남아있지 싶다.

이 통천문에서 기운이 다 빠진 재형이 친구 둘이 참치 캔을 따먹었고 그 힘으로 천왕봉까지 올랐다.

그 푸릇푸릇하던 청춘들은 모두 중년이 되어 있는데 통천문은 늙도 않고 그대로이다.

 

 

 

 

 

 

일출, 운해 .. 이런걸 떠올리며 기다리던 산행인데 내 눈앞 풍경은 대체로 이모양이다.

 

 

 

 

 

 

 

제석봉은 옛모습이 아니다.

고사목이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던 곳인데 그나마 그 나무들마져 뽑혔는지 구름에 갇혀 보이지 않는 것인지

단조롭다.

 

 

 

 

 

 

 

 

 

천왕봉에서 장터목대피소까지는 1.7km, 허기로 그 거리가 꽤 길게 느껴진다.

산에서 추어탕 먹는 사람도 드물터인데 지글지글 삼겹살 굽는 다른 사람들 점심에 군침이 돈다.

삼겹살 먹어본지가 억만 년은 된 듯한...몇 점 얻어 먹으면 날아서 내려갈수도 있을것 같다.

추어탕에 햇반을 넣어 폭폭 끓여 먹고 나서야 세상 부러울게 없다.

아니구나. 부러운 것은 없어도 산아래 동네로 내려는가야 하는구나.

아..백만 년은 걸어야 할 것 같은 거리 5.3km!!

 

 

   

                                                                                                            

 

 

 

 

 

 

 

 

 

 

 

 

 

 

 

 

 

 

 

 

 

대피소에서 나오자 자연이 주는 깜작쇼가 있었다.

바람이 좀 더 힘차게 구름을 날려주길 바랬지만 요게 전부다.

이렇게라도 봤지않냐 아무리 위안을 삼으려해도 아쉽다, 마~이 아쉬워.

 

 

 

 

 

산이 높으니 골이 깊고 흐르는 물소리가 우렁차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중산리까지는 참으로 지루한 하산길이다.

 

 

 

 

 

 

다리엔 이미 힘이 빠져 스틱에 의존을 많이하다보니 어깨와 팔까지 아프다.

배낭무게에 부쳐 팔이 저릿저릿하고 허리도 시큰거린다.

 

 

 

 

 

 

걸어도 걸어도 줄어드는 것 같지 않은..

그러다 만나는 이정표에서 남은 거리를 확인하곤 다시 힘내서 걷기.

 

 

 

 

 

 

물먹은 돌에 행여 미끄러질까 조심하며 걷다가 몇발자국 낙엽 폭신한 흙길을 걷자면 일순간이지만

마음이 평온해진다.

 

 

 

 

 

 

 

 

 

드디어 다시 중산리다.

천왕봉에 다녀온거다.

해냈다는 뿌듯함과 감동은 크지만 길게 즐길 사이 없이 허기를 다스리며 광양 망덕포구에 가서 재첩국과

재첩회무침을 먹었다.

"무척 배고프셨나봐요. 엄청 빨리 드셨네요"

정말 빛의 속도로 후다닥 먹었을게다. 주인아주머니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걸 보니..

 

 

 

 

 

 

허기도 허기려니와 송광사에 들릴 욕심에서 더 허겁지겁 먹었다.

송광사에는 꼭 들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아무래도 지리산을 더 보고싶었다.

노고단에 올라 멀리멀리 끝간데 없는 산봉우리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었다.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 아주 해맑다 못해 뜨거운 햇볕에 더위까지 느꼈는데 올라갈수록 구름이 몰려온다.

안돼 안돼!! 너희들 더이상 몰려오지 말란 말이야!!

 

 

 

 

 

 

나의 애절한 바램을 모른척하고 마침내 노고단을 휘감아버리는 못된 구름들.

 

 

 

 

 

정령치는 좀 나으려나?

거긴 더 심하네.

내가 원한 지리산의 표정은 이게 아니었다구!!

언제 좋은날 다시 와도 되겠다는 확신이 있으니 아쉬움을 뒤로하고 지리산을 떠나왔다.

 

 

 

 

 

 

 

 

 

웃지도 못할 정도로 뱃살이 당기고 아프다.

종아리는 아주 심하게 뭉쳐서 손도 못될 정도가 되었다.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기도 어렵거니와 차에 타고 내리기, 앉았다 일어나기가 정말 힘들다.

많이 걷고 가끔 산에 다니긴 했어도 그 규모가 지리산에 비할 것이 아님을 말해주는 통증들이다.

아구구구구...비명이 저절로 나온다.

그럴 때마다 '아 참! 내가 천왕봉 다녀왔지?'하는 생각이 들고 이내 통증들이 달달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