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양념
..난 음식 잘한다는 칭찬 좀 받고 싶어.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먹어주면 좋잖아. 난 음식을 너무 못해.
..음식 못하는 사람은 게으르거나 머리가 나쁘거나 중 하난데..언닌 뭐야?
작은새언니의 고민에 질문을 던져놓고 내가 답변까지 해준다.
..언닌 단지 너무 바빠서 다양한 요리를 해내지 못할 뿐이야. 언니는 고추절임의 종결자잖아.
그 초간장에 무치는 민들레랑 돌미나리도 너무 맛있던데 뭘.
늘 바쁘고 고된 일상을 살던 작은 새언니가 며칠 우리집에서 쉬고 오후에 돌아간다.
중한 수술을 받고 일주일 병원에 있을동안 난 무자격 프로 간병인이었고 퇴원 후 9일간 날림 요양원을
차렸다.
시집와서 30년동안 내게 고맙게 해준 것들을 알고는 있다는 표현으로 잘해주고 싶어서 통증과 독한
약으로 입맛 잃은 언니를 위해 되도 않게 요리 연구에 들어갔으니...
요리? 언냐 그거 별거 아냐. 볼래?
나의 요리 연구라 함은 보유하고 있는 식재료만으로 재빨리 손쉽게 만들수 있음이 첫째 덕목이다.
요리하는 수고를 덜어주어 요리에 지치거나 흥미를 잃지 않게 하는, 설거지감이 덜 나오게 하는, 맛있어
보여서 실제로는 부족한 맛을 교묘하게 커버할 수 있는 사소한 음식들을 말한다.
연구 결과, 언젠가 먹어본, 그래서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초간단 스피드 요리들이 나왔다.
웬만한 지능이면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게을러서 못하겠다 하면 할 수 없는...
나의 음식들은 늘 그렇다. 그래서 경쟁력이라곤 전혀 없는, 그리하여 온갖 과일로 입가심을 권유하는..
하필 엄청 요리 잘하는 큰새언니까지 온 첫 날 갈치조림이 너무 싱거워 의기소침해졌다.
나름 다시마와 무우를 먼저 삶아 그 국물에 양념장 만들어서 전문점 형색을 갖추었었는데 말이다.
무우도 씁쓸한 것이 맛이 없고.. 여름에는 무우가 원래 맛이 없다는 언니들 말씀.
이후 셀프로 간을 맞춰 먹는 요리에 주력했다.
초간장 고추장 초고추장 쌈장.. 쌈장은 직접 만들어 먹는다.
된장 고추장 맘에 드는 비율로 대충 넣고 파 마늘 다져넣고 양파도 다져넣고 통깨 넣어서 쓱쓱 비비면 된다.
양배추는 끓는 물에 말갛게 데쳐서 쌈장에 쌈싸먹고 브로콜리 데쳐서 초고추장 찍어먹고 각종 쌈채소에
풋고추며 오이 등등..그렇다고 이런거만 내놓으면 요양원 체면이 서지 않는다.
오징어 칼집 넣을 필요없이 걍 데치고 쪽파 양파 풋고추 당근 호박 얌전히 채썰고 감자는
데쳐 돌돌 말기 꼭 강판에 갈아 부침가루 한 술 넣어 노릇노릇
끝이 바삭하게 부치기.
오이 소금에 살짝 절여 물기 빼고 느타리 데쳐 식초물에 데친 우엉 돼지고기에 말아 실로 묶어
파 마늘 넣고 살짝 볶아 통깨 뿌리기 통후추 월계수잎 생강(가루) 넣고 장조림.
양파주머니에 오이지 넣고 꼭꼭 눌러짜서 마늘 오이 살짝 절여 양파와 함께 고추장에 무쳐
파 다진거 넣고 조물조물 무쳐 통깨뿌리기 통깨 뿌리기
도톰하게 썬 호박 살짝 기름 둘러 굽기 소금으로 수분 빼기 귀찮으니 그냥 구워서
양파 당근 파 다져서 진간장에 양념장 파 마늘 통깨로 양념장. 먹기 직전 양념장올리기
남는 양념장으로 상추 겉절이
냉동된 훈제연어 자연해동, 베이비채소, 채썬 다진마늘에 올리브유 넣어 바게트에 발라 굽기
양파 넣어 말아 시중에 판매하는 홀스래디시 끓는 물에 토마토 넣어 껍질 벗기고 씨빼서 썰기
올리기 토마토 모짜렐라치즈 바질 소금 후추 올리브유
넣어 섞어 올리면 토마토 부르스게따.
요구르트..1000ml우유에서 불가리스요쿠르트 한병 분 따라내고 불가리스 부어서 흔든다음
24시간 실온에 방치하면 플레인 요쿠르트 완성. 냉장보관하면서 먹기. 과일 이것저것 썰어
요것을 부으면 생과일 요쿠르트, 불루베리 갈다가 요걸 넣어 함께 갈면 불루베리 요쿠르트.
육류는 싫다는 언니라서 채소가 주류를 이룬다.
나름 열심히 연구한 밥상을 받으며 공주가 된 것 같다고 오빠랑 조카들에게 자랑이 늘어졌었는데
음식 고수들이 방문을 하셨으니...
농사 지으신 형부, 큰언니, 큰새언니로부터 다양한 완제품과 엄청난 농산물 협찬을 받게 되었다.
자랑삼아 일일이 열거하자면 노랗게 잘익은 오이지, 양념 착착 발라 넣은 포기 김치, 내가 좋아하는
오이 소박이, 배추 겉절이, 국물 자작한 열무와 얼갈이 배추 김치, 오이노각 무침, 비름나물 무침과
재형이 몫의 생 비름나물(내가 데쳐서 전해줬음) 호박, 풋고추, 청양고추, 부추,상추.
뭐..그래서 내가 만든 어줍잖은 음식들은 묻혔다는...
물론 이 많은 음식들은 재형이를 불러서 나누고 조카까지 불러서 챙겨보냈다.
..손맛이라는게 있을까? 난 그런건 없다고 봐. 머리 좋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음식 잘하는거 같지 않아?
난 음식이 들쑥날쑥 이랬다저랬다하는걸 보면 지능이 떨어지나봐.
내가 언니들에게 물으니 음식 잘하는 큰새언니.
..난 머리는 나빠.
...하하하
큰새언니는 음식 맛을 보지 않고 한번에 간을 맞추고 맛난 음식을 만들어낸다.
맛 안보는 것은 나랑 같은데 나는 왜 이 모양인지..
..그럼 큰새언니는 감각이 뛰어난가봐. 그리고 음식은 사랑이 있어야 하는거 같아. 하기 싫은거
억지로 하면 맛도 안나잖아.
..맞아. 누구에게 맛있게 먹여야겠다 생각하면 정성이 들어가서 더 맛있게 되긴 하더라.
이번에 큰언니의 맞장구.
..음..그럼 우리 언니들은 음식을 대략 잘하니까 사랑이 많은건가? 최고의 양념이 사랑인거지?
큰새언니가 사랑이 제일 많은건가? 작은 새언니는 맛이 있다없다 하다니 사랑이 있다없다 하나봐.
사랑을 키워봐.ㅎㅎ
새언니가 집에 있는 동안 가족들이 거의 다녀갔다.
비록 언니들의 음식으로 차린 밥상이 많긴 했지만 내 집 식탁에서 가족들이 둘러앉아 내가 지은 따뜻한
밥을 먹는 시간들에 마음이 따뜻했다.
여럿 형제들 중 두번째 막내이다보니 언제 가족들을 위해 직접 밥상 차릴 일이 없어 이런 행복한
마음을 너무 늦게야 알았다.
아직 신메뉴 개발 더 할 수 있다는데도 새언니는 돌아가고 싶어한다.
언제라도 내 엉터리 요리가 생각난다하면 그때는 요양원을 휴양소로 업종변경해서 언니를 불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