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교향곡 2악장
시냇물소리에 잠이 쉬 들지않아 귀마개를 하고 잤다.
어디로 빠져나갔나?
졸졸졸 물흐르는 소리에 잠이 깼고 꼬끼오 닭우는 소리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니 염소까지
한 수 거들며 매매 서두르란다.
창 밖 풍경 좋은 주방은 내게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자꾸 구름이 감아도는 산봉우리를 바라보다 결국 커피내리기가 엉망이 되어 치우느라 애먹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아마 좀 더 있다 오라고 했을겁니다. 울릉도는 지금이 제일 바쁘거든요.
승환씨의 말에 나를 환대해준 그들이 더욱 고마웠다.
아무것도 들고 오지말라며 옷을 미리 택배로 붙이던지 자기들 옷을 함께 입으면 된다고 가볍게 와서
마음 쉬고 몸 쉬고 가라던 그녀들, 상희 상정 상미 자매들이 있어 내겐 울릉도가 가까웠다.
대접도 제대로 못해서 어쩌냐며 끌탕인 승환씨는 둘째 상정의 남편.
서울에서 나고 자란 연자매 넷 중에서 막내 상숙만 빼고 몇 년 전부터 시간차를 두고 귀농생활을 시작했다.
내 여행의 2악장은 귀농체험.
물건이 가득찬 내 배낭 세개는 넉근이 들어갈 만한 저 배낭들에 주목하시라.
명이나물로 가득 채워야 할, 아니 꽉꽉 눌러담아 내려와야 할 배낭이다.
산마늘이라 불리우기도 하는 명이는 쌈채나 데쳐서 무쳐먹거나 장아찌로 먹을 수 있다.
한 달 여 정해진 기간동안 울릉군민만 체취할 수 있도록 완장까지 발급해준단다.
그러니 엄밀히 따지면 난 불법 임산물 채취를 하는 셈.
..언니 조심해. 여긴 육지 산하고 달라.
상미 상정은 나를 어린애 취급이다. 자꾸 뒤돌아보며 나를 챙긴다.
거의 7,80도 경사로 가파른 산에 길도 아닌 곳으로 다니며 나물을 뜯는 일은 꽤 위험하다.
해마다 사상자가 나오고 올해도 벌써 세 명이나 명이 채취를 하다 낙상사를 했고 또 한 사람은 크게
다쳤다한다.
나도 나름 산행 구력이 있다고 염려말라며 올라가라 했다.
그녀들이 나를 위해 그나마 수월한 산을 선택한 것이 마음쓰이고 혹여 명이를 만나지 못할까 걱정했다.
그러면서도 나무숲에 감탄하고 천남성 사진을 찍고 큰연영초에 눈맞춤하고..
컨테이너 주인인 남희언니가 걸음이 더뎌 내 해찰이 그나마 산행에 지장은 없었다.
..언니 이게 명이야.
둥글레 잎 같기도 하고..
혹 비슷한 풀인데 독초이면 어쩌지 싶어 선뜻 명이를 봐도 따기가 어렵다가 드디어 내 눈에 명이가 익었다.
재미있다.
가파른 산에서 마땅히 붙들고 이동할 나무를 못찾으면 칼을 꽂아 손잡이로 이용하는 방법도 터득했다.
중간중간 상희가 알려준 미역취랑 부지깽이나물, 독활도 뜯어 모으다보니 한 손 가득이다.
이럴줄 알았으면 큰 배낭 가져올걸. 상희가 준 작은 비닐백으로는 택도 없다.
상희 상미는 가끔 내 위치 확인을 하는데 꽤 먼거리에 있는듯하고 남희언니는 어디로 가셨는지 인기척도
없으니 나물 담을만한 마땅한 공간이 없다.
이럴땐 잔머리가 팽팽 돌아간다.
스카프와 리본으로 허리춤에 주머니를 만들어 나물을 채우다가 배낭을 정리해 옮겨 담았다.
명이 채취 삼매경에 빠져있으니 세상 근심걱정이 모두 사라져 신선이 될 지경이다.
이렇게 재미 있어서 저리 걷기 싫어하는 연자매들이 두 발 양옆에 딱딱한 군살이 배기도록 이 경사진
산을 매일 오르는거구나.
선생님들도 공무원들도 주말이면 명이를 뜯으러 나가고 미장원하는 사람들도 가게문 닫고 명이를 뜯으러
다닌다는 울릉도에서 타지의 여행객도 열심히 명이를 뜯어 주머니에 담고 또담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스카프 묶은 것이 풀리면서 가파른 경사에 나물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다시 전열을 가다듬었다.
이래저래 나의 나물은 양이 더디 늘어난다.
그런데 이제 어디에 나물을 담는다?
상미와 상희를 불렀다.
내 배낭에 있는 간식 좀 먹어달라고 사정사정해서 배낭을 비우고 나물을 구겨 넣었다.
둘은 어느새 배낭을 거반 채워서 내려왔다.
셋이 간식을 먹으며 낄낄깔깔 웃고 하하하 웃어젖혔다.
..언니. 멀리 와서 관광해야 하는데 이렇게 나물이나 뜯으며 고생해서 어쩌냐?
..아냐. 난 너무너무 재미있어. 관광 따위에 비할바가 아닌걸.
상희의 손톱에 주목하시라.
그녀들은 엄지와 검지에만 매니큐어를 했다.
나물을 많이 뜯어서 손가락이 갈라져 있고 손톱밑이 까맣게 된 것이 이유다.
장갑을 끼기는 하지만 언제 구멍이 나는지도 모르게 열심히 나물을 뜯어 올 4월 중순부터 그녀들은
꽤 많은 수입을 챙겼다한다.
봄날 주수입원이 명이이다보니 어디에 명이가 많은지 동네사람들끼리도 서로 절대 비밀이란다.
상희와 상미는 9kg 10kg을 뜯었고 나는 3kg을 뜯었다.
하루종일 명이를 뜯는 사람들은 몇 십 kg씩이나 뜯고 그러다보니 그 무게에 몸이 망가져 그 돈을 고스란히
병원에 갖다 바치는 경우도 많단다.
나도 그녀들처럼 명이를 팔아서 돈을 챙겼다.
내가 너무 재미 있다고 다음날도 명이를 뜯으러 가자고 했고 굳이 시들도록 보관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나도 그녀들처럼 팔아보고 싶었다.
부지깽이와 미역취는 잡동사니 나물 취급이고 달래는 쳐다도 안볼 지경이라 냉장고에 보관했다.
나물 판 돈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용돈 약간을 주고 내 돈 더 보태서 시장을 보러 갔다.
상정 부부는 장아찌를 직접 담그고 울릉도 특산물을 판매하는 일로 분주하다.
특히 요즘은 서너시간 잠을 자면서 1년 준비를 하느라 눈코 뜰새 없이 쁜 상정씨가 요리를 주로 하기 때문에
뭔가 도움이 되고 싶어서 아이들에게 어린이날 선물로 떡볶이를 해주기로 했다.
시장봐서 돌아오는 풍경도 일품인 울릉도.
아이들이 배가 고플것 같아 낙조를 끝까지 지켜보지는 못햇다.
엄청난 양의 떡볶이와 딸기스무디를 내가 준비하고 상정이 만두를 튀겨 저녁식사를 했다.
피곤하지 않냐 하지만 내 컨디션은 최고조였다.
나리분지에 민박을 예약하고 못오신 분이 나더러 이용하라 하셨지만 그녀들은 혼자 산중에서 자느니
복작거리는 곳에서 함께 지내자 한다.
누군가가 나를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일이 번거로울듯 해서 상정집에서 둘째밤을 지내기로 했다.
다시 우르르 몰려내려가 장아찌 담그는 일에 가담했다.
상정부부에겐 일이지만 내겐 즐거운 놀이라서 제발 나를 활용해달라고 부탁했다.
밤늦도록 일을 해야하는 그들에게 내 시간이, 내 두 손이
보탬이 되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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