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비결
아주 오래되어 낡은 장식장이 하나 있다.
유리문에 예쁜 커텐을 달았다.
폼나는 장식품들이 아니라
색색의 털실 십자수실 퀼트실 일반 바느질실
그 실을 위한 온갖 바늘과
그 실과 바늘로 꿰맬 수 있는 각종 헝겊들과
그것들이 마무리 되지 않은 바느질감들.
꽃가위 쪽가위 재단가위 일반가위에
굵고 가는 철사들과 포장지, 그것을 마무리할 리본들
트레이싱페이퍼, 줄자 몇개에 길이가 다른 플라스틱 자들,
몇가지 화병들까지 가리기 위해 예쁘게 커텐을 해달았다.
나는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생명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생명이 없다해도 내 손을 거쳐 얼마간의 생명을 부여해 줄 수 있으므로
어느것 하나 단박에 버리는 일은 없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래왔다.
버려지는 옷의 단추를 떼어 모으고
버려지는 옷의 일부를 잘라서 새로운 것을 만들고...
열가지 재주 가진 사람 끼니 간 곳 없단 소릴 많이 들으며 자랐다.
참 듣기 싫은 말이다.
다 자라서 생각해보니 내가 열가지씩이나 재주를 가진 사람은 아니다.
난 단지 한가지, 사소한 감각을 타고난 사람일 뿐이다.^^
그렇게 타고난 감각에 엄마의 구박이 자양분이 되어 지금의 내가 있게 되었다.
'께을배기'라 부르시는게 너무 싫었던 시절이었다.
손가락이 길고 팔이 길고 다리가 황새같은게 내 탓도 아니거늘
그것들을 들먹이며 께을배기라 하셨으니
나는 늘 다른 형제보다 조금 빨리 조금 더 많이 움직여야
이불을 뒤집어 쓰고 속으로
'확 죽어버려서 엄마에게 복수할거야' 하며
서럽게 우는 일을 줄일 수 있었다.
밋밋한 꽃병에 옷을 만들어 입히며
새삼 엄마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진짜 께을배기가 되도록 방치하셨다면
지금처럼 주변사람들에게 소소한 도움을 주는 사람은 커녕
나 스스로도 너무 무료하고 밍밍한 사람이 되었을게 뻔하다.
끼니가 그리 넉넉한 삶은 아니지만
도움을 청해오는 사람들에게 나의 사소한 감각이 명쾌한 해답이 되고
그니들 행복이 몇 배 증폭되어 내가 넉넉해진다.
잘난체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아프냐는 질문도 받는다.
잘난체 지존임에도 나는 인기가 많다.
아마도 울엄마가 선견지명이 있으셨나부다.
이쁜 딸이 이쁜척만 하다가 사회에서 매장될까 염려되어
갖은 구박으로 담금질을 하셨나부다.
아..써놓고 보니 울엄마가 삯바느질이라도 시키신거 같네.^^
(2010년 1월 28일 수정. '선견지명'을 '선경지명'으로 써놓고 잘난체 디립다 했다는..
흔히들 헷갈리는 산(삼)수갑산이나 풍지(비)박산 처럼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님을 밝히며..ㅎㅎ
더 나이먹으면 성경지명으로 쓸 수 있음도 참고 해주시면 감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