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날

즉흥곡을 위한 즉흥드레스

틈틈여행 2009. 10. 31. 23:24

 

 

 

 

 소미가 요즘 한창  이쁘다.

..나는 고품격이야.

이래가며 우아를 떨어도 밉지않게 이쁘다.

고품격 조카가 처음으로 피아노 학원에서 하는 발표회

무대에 서게 되었다.

연주곡은 슈베르트의 즉흥곡.

드레스는 개인이 준비해야하는...

고품격 운운 하는 것도 나를 닮았다 하며 재료비 낼테니

드레스 만들어 달라는 재형이.  

음하하하..신난다!!

닭고기 좋아하는거 빼곤 모조리 나를 닮은 조카인데

무엇인들 못하리.

 

 

 

 

 

 

별 뾰족한 생각도 없이 동대문

시장에 나갔다.

두어바퀴 레이스 상점들 사이를 돌며 대충 윤곽을 잡고 필요한

원단과 부자재를 구입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소미의 치수를 재었지만 정확하게 그 숫자들에 맞게 될런지는 나도 의문이다.

왜냐면 탁월한 눈대중과 대충

한번 줄자를 대어보면서 만드는 주먹구구식이 내 방식이니까.

그래도 이번엔 직접 재단을 하지 않고 트레이싱 페이퍼에 패턴을 만들었다.

 

 

 

 

 

 

 

 

 

30분만에 쓱싹 그렸더니 어째..그게...

미심쩍어 패턴을 반 뚝 잘라 늘리는 작업을 했다.

시침을 하는데 기가 막히게 딱딱 들어맞는다.

흠...난 왜이렇게 잘하는거얌.

3일간 퇴근 후 작업을 해서 가봉을 할 수 있게 만든 것을

가지고 소미를 만나러 갔다.

녀석의 수능시험이 코앞이니 본 바느질은 커피 타주고

온갖 시중 들어준다는 재형이네서 하기로 했다.

 

 

 

 

 

 

 

 

 

 

 

 

..꺄아~~악!! 이모 너무 예뻐요, 완전 맘에 들어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야!!

가봉을 하려는데도 벌써 이 정도 반응.

..이모 믿지?

..네~~ 믿어요~~.

대충, 대략, 어림으로 만들었는데 그냥 바느질했어도

문제없을만큼 예쁘게 잘 맞는다.

재형인 사진을 찍어 여기저기 자랑하기에 바쁘고

상관없는 소은이는 막내딸 굶어죽겠다고 아우성이다.

소미는..

..이모. 이럴때 그림이 오빠한테 고마워요. 오빠가 언니로

  태어났으면 우리한테 이런거  안해 주셨을거잖아요.

  이모 저 학원 갈건데 연습 열심히 할거에요. 3시간동안

  열심히 하고 올게요.

 

 

 

 

 

 

 

 

본격 바느질.

재형인 실밥을 제거하고 커피를 내려 나르고 간식을

준비하고, 나는 바느질 삼매경에 빠져서 커피가 차갑게

식어가도록 모른척하고 화장실 가고 싶은 것도 미뤄두고..

두꺼운 부분도 한번에 드르륵, 염려했던 지퍼도 한번에

척척 잘 박음질 되고 대충 재단한 깃도  길이가  딱

알맞게 달리고..수월하게 진도가 나갔다.

 

 

 

 

 

 

 

이제는 바늘에 실 꿰는 것도

어려워(워낙 가는 바늘을 쓰기도 한다) 재형이에 부탁했다.

고품격으로 빛나는 스와롭스키 크리스탈을 꿰매 달고 재형이가

그 사이 진주구슬로 모양을 냈다.

 

 

 

 

 

 

 

 

나는 짜투리 천들과 구슬을 노려보았다.

뒷태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라 코사지랑

머리핀을 사려고 몇바퀴를 돌았었다. 

한번 입을거라 대충 할것인가,  한번이니

아낌없이 해 줄 것인가?

아픈 발로 품을 팔았지만 맘에 드는 것도

없었고 비용절감도 하자싶어 아무 대책도

없이 만들어 쓰자고 큰소리쳤다.

실과 바늘만 잡으면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내

감각을 믿는다.

늘 나쁘지 않았고 때론 아주 성공적인 감각을..

 

 

 

 

 

 

별 것 아닌 것이 별 것이 되게하려면 머리를

써야한다.

자유롭게 굴러가는 머리속의 오만한 디자인을 어눌한 손끝으로 행하자면 일이 복잡해진다.

난 전문가가 아니니까..

내 손끝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머리로 생각하고

나자 내 두 손에서 뚝딱 리본과 머리핀이

완성되었다.

 

 

 

 

 

 

 

 

 

4시간 가까이 연습에 몰두하고 돌아온 소미가 완성된

드레스와 만났다.

..이모 너무 예뻐요. 마음에 쏙 들어요. 대박 좋아요.

  아마 제 드레스가 제일 예쁠거에요.

..이모 믿어, 안믿어?

..믿어요~~!!

..그럼 이 드레스 이쁜 만큼 피아노 자신있게 치는거야,

   알았지?

 

 

 

 

 

 

 

 

 

소미의 움직임에 딸을 둔 엄마들의 시선이 따라나디는게 보였다.

 피아노 연주를 하는 아이들을 미용실에 데리고 갔다가

추리닝이나 청바지 위에 와이어가 들어간 패티코트를 입히고 드레스를 입힌 다음

운동화를 신겨온 엄마들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집에서 차리고 나선 소미가 제일 예뻤다.

뿐만 아니라 시선을 화~악 잡아 끈 소미는 관객들의 귀까지 사로잡았다.

무딘 내 귀가 다른 아이들과의 차이를 알아 들었고 참석한 관객들도 알아들었다.

떨린다더니 스스로 음악에 취해서 너무 예쁜모습으로 피아노와 교감하는 소미를 보며

눈물이 핑 돌게 가슴 벅찼다.

야박스레 박수도 안치던 관객들이 소미의 즉흥곡에 집중하는게 느껴지더니

마침내 우뢰와 같은(ㅎㅎ 그래봐야 120여명의 관객) 박수와 환호성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소미가 극구 하지말라고 말렸던 '브라보'를 조카와 내가 다른 관객에 묻어서 힘껏 소리쳤다.

마지막으로 고등학교 2학년이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해서 환호성이 나왔지만

소미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했다.

음악하는 조카(소은이의 표현에 '조금 유명한')의 객관적인 평가에 의하면

다른 아이들은 피아노를 치는 것이고

소미는 연주를 하는 것이라며 제일 연주를 잘했다고 했다.

어느 아이의 할머니인지 아주머니 한 분이 소미의 등을 토닥이시며

'오늘 너무 너무 잘했다' 칭찬을 하고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