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일기
05:30
이게 무슨 소리냐...까마득한 나라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모닝콜이다. 일단 해제를 하고 잠깐 생각에 잠긴다.
도시락을 준비해 말어. 에이~ 말어. 졸립기도하구 강가의 아침이 썰렁할거야.
05:50
깜빡 잠들었다가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벌써..
그래도 천천히 일어난다.
벌떡 일어났다가 이러다 죽나보다 싶게 어지럽고
머리가 아파 고꾸라지듯 다시 누워 한참을 못일어난 일이 며칠 전 있었다.
그래. 아침밥 먹기가 수월치 않을거야.
이왕 장을 봤으니 밥을 하자.
전날 씻어놓은 쌀로 밥을 짓고 멸치 넣은 김치찌개, 계란말이, 샐러드와 연두부 양념장을 만들었다.
커피도 갈아서 싱싱하게 내리고 오렌지도 썰어
담았다.
07:10
10분 늦었다. 미루샘 집앞 말이다.
09:10
대성리 유원지에 들어섰다.
두물머리에서 서종면을 거쳐 청평대교를 건너 내려오는 꽃길은 꽃달력을 다시 만들어야겠다 싶을 정도로
지난해, 지지난해와는 달리 벌써 꽃잎이 많이 날려서 꽃잎들이 성글었다.
강가의 수양버들과 벚나무들이 기분을 좋게하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내마음을 순하게 만든다.
나는 사진이나 수다로 풀어낼 표현력이 없어서 늘 요때쯤 꼭 가보시라 권할 밖에..
09:50
도시락은 준비하는 귀찮음에 다섯배 가량의
즐거움을 돌려주는 요술쟁이다.
내가 좋아하는 강물옆에서,
한창 연두 수양버들아래서
가끔 날리는 벚꽃잎을 맞으며
아침 혹은 점심을 먹는 일은 꽤나
낭만적인 일이다.
한 끼 맛있는걸로 사먹으면 되지..
맞다, 그럼 된다.
하지만 꽃그늘 아래 맑은 공기와
더불어 밥술을 떠보지 않았기 때문에
귀찮음과 즐거움 사이를 저울질 하시는 거라는...^^
미루님이 딸기와 모닝빵에 잼을 발라 준비해오셨다.
11:10
집에 도착했다.
헐레벌떡 청소기 돌리고 걸레질은 나중으로 미뤄두기, 화분에 물주고, 아침에 돌려놓은 빨래감 헹굼추가
탈수해서 널기. 사이사이 잠퉁이 아들 깨우기. 녀석 점심식사로 삼겹살 준비해주기.
다시 커피 갈아서 내리고 오렌지 또 썰어 담기. 등산화 양말 선크림 선그라스 준비해두기.
40분만에 해치우는 신공을 발휘하고 녀석의 과외가 시작되었을 때 잠깐 앉아서 눈을 붙이니 솔솔 잠이 온다.
깜빡 잠들었다가 전화벨 소리에 일어나 짐을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15:20
일행 둘이 결혼식에 다녀왔지만 축의금만 내고 밥도 못먹었다고 투덜거려서..내탓 아니거덩요.
휴게소에 들려 우동을 먹고 슝슝 달려서 횡성에 도착했다.
일단 설탕을 전혀 먹이지 않은 순수 토종꿀물로 먼길 달려온 피로를 달래주시는 주인장님.
하시는 사업과 전혀 연관이 없는 농사일이지만 전문 농부 못지않게 관심이 깊으셨다.
주말마다 내려와 지으신 농작물 자랑을 하시고는 텃발을 허락하셨다.
내가 폼이 다소 어색해보이나 호미질 좀 한다.
천마를 캤다.
돌아와서 효능을 살펴보니 정말 좋은 식품이다.
건강보조식품 못믿겠다구 못먹는 내가 직접
캐냈으니 장복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많이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생각나는 사람은
여럿이다.
시장에 가져가면 중국산이라고 사는 사람이
없다하시는 말씀을 듣고 필요하신 분 직접
연결해보겠다 했다.
1KG에 28000원 정도가 시세라 하셨다.
17:00
천마만 캔 것이 아니다.
더덕이랑 도라지 자연산 마까지...
뭐든 생식이 가능한 것들이라
물에 씻어서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좋은 기운이 펄펄 나서 집에까지
뛰어서도 갈 수 있는 있을 것 같은
훌륭한 기분이 들었다.
꿀통이다.
참 볼 품 없어보이지만 진짜 꿀이 차곡차곡 모여지는 꿀통이다.
"설탕값이 비싸서 설탕 못먹여요"
한참두면 하얗게 설탕이 가라앉은 그런 꿀인척하는 꿀과는 다른
진짜꿀물을 타주셔서 그분 말씀이 사실임을 알겠다.
진짜꿀의 가치를 아는 분들께 판매하고 싶다고 하셨다.
뒷산에서 주은 도토리도 중국산이라고 안믿는 세상에 헐값으로
내다 팔 수 없는 꿀이라고 하셨다.
한 병에 30만원이라고 가을에 팔아달라고 하셨다.
물론 내게 부탁하신 것은 아니지만 좋은 꿀 필요하신 분 연결해드리고 싶다.
18:30
슬슬 배가 고파오던 차에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집에 들어서니 맛있는 냄새가 가득하다.
단순한 시골밥상이 아닌 식욕을 돋구는 맛있는
색감에 일단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인장의 형수님 음식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백김치가 알맞게 익었고 겉절이 싱싱, 방죽에서
잡아온 미꾸라지로 끓인 환상적인 추어탕, 향이
살아있는 표고버섯볶음, 우리가 캐낸 더덕구이,
꼬들꼬들한 제육볶음에 개울가에서 뜯어오신
향긋한 쌈채소, 손님온다고 이웃에서 만든 두부를 가져오셨다고 두부찜은 야들들 보들보들..
건강한 노동 뒤의 맛있는 저녁식사가 입에 짝짝 붙게 달고 상대적으로 반주로 마시는 쐬주는 너무 쓰다.
술은 술상에서 먹어야 제맛인건지..하긴 내가 언제 밥상에서 술을 마셔봤어야지.
19:20
일요일 저녁이면 집에서 느긋하게 쉬어야 새로운 한 주가 편한데 늦어진 시간이 좀 부담스러워서
별빛이 차~암 좋다고 별을 보고 가라시는 주인장 말씀에도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또 오라고 하셨지만 진짜 또 와도 반기실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우리가 챙겨오는 것이 많았다.
천마뿐 아니라 천마가 먹고 자라는 참나무까지 세 개를 파서 실었고 천궁이며 작약은 부리째 뽑아오니
아주 초토화 직전인게다.
맛있는 저녁식사에 배가 부르고 차의 트렁크에 가득한 수확에 기분이 부르다.
"오늘 정말 날라다녔다. 그래도 자연산으로 좋은 것들 많이 먹어서 피곤한걸 모르겠네"
아침부터 아들 생일에 결혼식들에 바빴다는 애기지만 내가 평정했다.
"나처럼 바빴을라구요. 난 새벽 다섯시 반에 일어났다니까요"
22:00
커피로 마무리하고 들어왔는데 아들에게 어찌나 미안하던지..
"엄마가 약초를 캐왔지 뭐야. 요즘 이모네 식구들이 몸이 안좋아서 말이지. 이모부랑 이모 소미 먹일라구..."
거짓만도 아니다.
실제 요즘 동생네가 그렇다.
궁금해하시는 분들 계셔서 소식 전하자면 바쁜 동생이 심하게 아프기까지 하다.
수액까지 맞았다길래 점심 사주고 천마를 전했다.
몇번 갈아먹고 기운 펄펄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