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자뽀니스로 간다!
자뽀니스를 아십니까?
원전을 말씀드리자면 옛날 옛적 호랭이가 담배 피던 시절까지는 아니고 지난 초겨울 저~~시골마을
큰언니네 동네의 언니네 김장하던 날로 넘어가야 한다.
그 동네엔 올해 일흔 하나가 되신 봉염아주머니는 2년 전 소문난 수원의 어느 불법성형수술실에서
야매로 이목구비 구조조정을 하신바 쌍꺼풀도 만드시고 콧대도 세우셨다.
울 형부는 민망해서 쳐다보지도 못하겠다 하시는데 그래도 그 아주머니 젊어지셨다, 이뻐지셨다 해드리면
눈을 좀 더 쨀걸 그랬나, 콧대를 한 치만 더 높여달랠껄 그랬지 하시며 다시한번 색경을 들여보시곤 한다.
울언니 시집가던 해부터 저도 그분을 뵈었으니 40년이 넘었고 언니를 통해 들은 봉염아주머니의 캐릭터가
귀여워서 가끔 저는 아주머니를 놀려먹기도 한다.
우리 형제들이 해외 여행을 간다하니 어디로 가냐 물으셨다.
..일본이요.
..아니 왜 자뽀니스로 가? 나두 가봤는데 중국도 좋고 태국도 좋은데?
자뽀니스? 자뽄(Japan)도 아니고 닛폰도 아니고 재패니스도 아니고 자뽀니스(Japanese)?
동생과 나는 순간 푸하하하..
..자뽀니스나 떼국이나 양키나라나 집 떠나면 다 좋은데 어디면 어떻겠어요. 그래서 가까운 자뽀니스로
정했어요.
자뽀니스 여행의 시작은 이러하다.
3년전 친구들과 3박4일 북해도를 다녀와서 집안 여자들끼리 가면 너무 좋을것 같다고 노래를 해오던바
지난 3월 큰새언니 생일에 여자들끼리 모여 밥을 먹으며 동생의 숙원사업이던 이 일을 도모했다.
나는 옆에서 바람잽이를 하면서 3월부터 열달 간 어른들만 11만원씩 총무가 만든 여행통장에 입금하기로
정했다. 일시금으로 내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 매달 입금을 하면서 여행의 꿈을 키우기로 정했다.
100만원 정도를 여행패키지로 생각해서 10만원은 본인 몫으로 1만원은 수녀님 몫, 아이들 경비는 부모들이
알아서 준비하기로 하기.
손에 잡힌 자뽀니스
한 달 한 달 돈이 샇여가는 가운데 엔화가 치솟으면서 우리의 불안감이 같이 올랐다.
슬슬 본격적인 준비를 해야 하는 시점에서 우리가 예상했던 비용보다 20만원이 비싸게 상품이 나와 있었다.
맘먹은거 가긴가겠지만 기분이 비용추가를 하는게 그리 말끔한 기분은 안났다.
11월 , 가족들 모일 때 상품에 대한 논의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여행사 대리점 하는 친구에게 의뢰를 하려고
여행사 싸이트를 들어갔는데..이게 웬일 거의 흡사한 상품이 99만원!! 딱 우리가 생각한...!!
논의는 무슨 논의. 북해도에 가본 사람 어차피 재형이 뿐인데..그자리에서 바로 예약에 들어갔다.
의견을 듣고 수렴하자면 결론내기도 힘든일, 이럴땐 그냥 큰틀을 정해두고 알아서 조율을 하게끔
하는 뱃장도 필요하다. 큰언니만 빼고 모두 일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알아서들 밥줄 안끊기게 정리가
된 모양. 우리 가족들의 특장점이 바로 이거다. 뭔일을 도모하던 간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주는거.
친구의 도움으로 열 달 준비한 비용중에서 42만원을 챙기게 되었으니 공동경비로 충분할 것 같다.
아니 모자라면 모자라는데로 이것을 한도로 쓰기로 했다. 우리는 해외여행도 주머니만큼 한다.
우리의 인적 구성을 살펴보자면..
병꽃언니...
해방둥이. 우리형제중 맏이. 내가 제주도 나녀온 횟수보다 언니의 자뽀니스 여행이 더 잦은것 같다.
큰새언니 영숙씨...
52년생. 그러함에도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게 되어 무엇보다 내가슴이 벅차다. 남동생이 중국에 있어
여행계획을 세웠다가 시누이들 등쌀에 일본이 먼저다. 이래서 올케들이 시청도 안가고 싶은건가?^^
작은 새언니 정임씨...
59년생. 왕십리와는 상관없슴. 아들과 둘이 한 달간 유럽 배낭여행을 한 다소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
임마꿀랏따 수녀언니...
58년 개띠. 여권이 젤로 나달나달할 정도로 외유경력이 많으나 가족과는 처음이라 총원장 수녀님이
특별 승인. 영어가 유창하나 자뽀니스가 영어에 무지하니 벙어리이긴 우리와 매한가지.
삐수니.
계묘생. 난 암말도 안했음에도 옷차림까지도 내 눈치들을 보고 있슴.
양재형.
68년생. 이 여행의 시작점. 총무.
숙경이.
큰새언니 맏딸. 첫 해외 여행. 알바로 여행비 충당.
땅콩.
아주머니들과 아이들 틈에 끼어서 여행하기엔 아까운 꽃처녀. 그래도 해외여행은 가족에게서 배우는겨.
솜솜...
열 세살. 자유경비 쓰려고 열심히 용돈 모았슴.
손손..
열 한살. 아후~머리야. 기념품에 목메는 손손. 은근과 끈기로 기다려주기로 작정했슴.
혜빈..
열 두살. 숙경이 큰 딸. 아마 앞으로 이렇게 많은 할머니들과 여행할 일은 없을거다.
외할머니 작은 외할머니 고모할머니 넷.
수빈
열 살. 혜빈 동생. 너 복받은겨. 우리 모두 그나이에 해외 여행 꿈도 못꿨어.
남은 남자들? 알아서 하겠지.
공동으로 모여 곰국을 끓이자 어쩌자 했는데 결국 큰언니가 만두를 만들고 콩탕을 끓여 나누어 주었다.
어쨌거나 각자 집에 남은 남자들은 독신체험을 하게 되었고 내 아들 녀석도 3박 4일 고아체험에 들어간다.
..내가 가야 통역이 되는데.
사실 녀석이 따라가면 조금 쇼핑을 하거나 저녁시간 자유롭게 지낼 때 약간의 도움이 되긴 하겠으나
극구 고3이 어딜 가냐고 뺀다. 멤버가 맘에 안들어서 안가는거 내가 알고는 있다 이노마.
이번주까지 보충학습을 하러 가야하는데 아침에 혼자서 벌떡 일어나보라지. 다행히 아침은 가볍게 먹고
점심은 학교에서 먹으니까 저녁만 혼자 챙겨먹으면 된다. 갈비와 불고기 재두웠고 김치 썰어놨다.
내가 돌아올 즈음 집안이나 깨끗한 상태로 해뒀으면더 바랄게 없겠다.
어쨌거나 집 떠나면 집 생각 안하는게 여행에 대한 예의.
어쨌거나...
현재 시각 새벽 다섯시.
우리는 지금 자뽀니스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