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만큼 여행하기2

선운사에 가보셨나요?

틈틈여행 2008. 9. 22. 23:21

선운사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빠른 걸음을 걷는 내게 왜그렇게 서두르냔 질문이 들어왔다.

"빨리 꽃무릇 보구 싶어서.."

심장박동이 빨라지면서 두근두근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밥부터 먹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8시 30분 밖에 안된 시간에 벌써 밀려들어오는 사람들이

무서워서 꽃부터 보자고 했다.

그 무거운 카메라에 삼각대, 가방을 매고 줄지어 들어서는 사람들

전국민의 작가화, 전국민의 기자화 시대다. 문득..저사람들 다~~블로그하는건가?

 

과연 만개한 꽃무릇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난 이럴때 詩心 없음이 그렇게 한탄스러울 수가 없다.

그저 좋다, 좋다, 좋아서 미칠 것 같다..는 표현 밖에 할 줄 모른다.

남들은 시를 한 수 짓고 노래를 한 곡조 만들어 내는데 일차원적인 나는

오죽하면 이런 감동들을 '일상의 오르가즘'으로나 명명해두었을까.

 

급한불 끄듯이 꽃무릇을 대하고 나니 온몸에 기운이 쪼~옥 빠지고 허기가 밀려왔다.

밥을 먹고 다시 꼼꼼하게 둘러보기로 했다.

다리가 삐끗한 일행이 있다고 거짓부렁을 하고 차를 윗쪽으로 옮겼다.

준비해온 도시락을 펼쳐보니 진수성찬이다.

밥과 김치를 맡겼더니 영미언니 깎두기, 잘익은 배추김치와  더불어 과일까지 준비해오셨다.

그리고 3시에 일어나 들기름 발라 구운 바삭한 김을 싸오셨다.

지난 여행에 반찬이 너무 빈한했던 것에 한이 맺혔던 영례씨, 빈손으로 와서 너무 민망했다고

이번엔 더덕무침, 깻잎장아찌, 북어찜에 사과, 배도 얌전히 깎아오고 계란도 8개나 삶아왔다.

"이런 반찬은 여행 갈 때는 안먹는줄 알았어? "

"그럼 스테이크에 립, 랍스타 싸가지고 다니리?"

뭘 싸오냐 묻는 재금에게는 냉장고에서 쳐지는 거 다 들고 나오라고 했다.

부모님이 농사지으신 꿀처럼 달콤한 고구마를 쪄서 식힌다음 가져오고, 아삭한 오이소박이,

엄마가 좋은 솜씨로 볶으신 멸치를 가져왔다.

나는 맛을 보장할 수 없는 시금치 무침과 싸리버섯 볶음, 검증된 된장찌게를 준비했다.

잘 안먹게되는 포도와 커피도 넉넉히...

 

내려가는 중에도 살살 아프던 뱃속이 밥을 먹고 난 후 점점 기분 나쁘게 아파졌다.

자꾸 눕고만 싶고 피곤한게 식곤증하고는 증상이 사뭇 다르다.

전날 먹은 참치회가 아무래도 문제가 되는듯..

차안에서 쉬고 싶은 맘이 굴뚝 같으나 복분자를 곁들인 풍천장어를 먹고 갈라치면 일단

소화를 시켜야한다는데 의견이 모아져 도솔암엘 오르기로 했다.

선운사에 그리 여러번 다녀같음에도 한번도 가보지 않은 도솔암이다.

선운사에 안부 전해달라는 부탁도 받은지라 어느 암자에 머무르셨을까 궁금도 하고해서

올라보기로 했다.

 

느릿느릿 걷기에 좋을 숲길을 힘에 부쳐 허적허적 걸었다.

꽃무릇 무더기를 만나 한참을 다리쉼하다가 다시 오르는 길은 덥고 갈증이 났다.

오르는 중간중간 틀어쥐듯 배가 아파서 몇번이나 나도 모르게 배를 감싸쥐고 인상을 썼다.

그렇잖아도 고민스레 나와있는 중부지방이 윗배, 아랫배 할 것 없이  퉁퉁 부어있다.

 

도솔암에 도착해서 마시는 두 바가지 샘물에 조금 정신이 난다.

줄지어선 단풍나무가 얼마나 이쁜지 가을에 꼭 다시 와야할 것 같은 바쁜 마음이 든다.

그 나무들에 가려서 뭔가 시원하게 보일거라 여겼던 풍경은 생각보다 보이지 않는다.

기도를 하고 우리 찾아 내원암에 올라갔다온 영미언니가 그곳에서 보는 풍경이 좋다하신다.

오르자, 말자를 몇번 고민하다가 포기했다. 평상시의 내가 아니다.

"그냥 가면 후회 될거 같은데..."

영례씨의 작은 혼잣말이 들렸다.

그래 가자, 나도 그럴거 같아.

우린 다같이 우르르 가파른 돌계단을 올랐다.

"그래. 올라오길 잘했네"

올라와서 보니 건너편 선운산 정상에 오르는일도 참 즐겁겠다 생각이 들었다.

우뚝우뚝 커다란 바위들이 시원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부지런한 나무들이 가을빛을 내기

시작한 것도 보였다.

 

내려오는 길 700M만 가면 있다는 참당암엔 마음은 있어도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아..웬수같은 참치회.

"아픈사람이 왜이렇게 걸음이 빨라?"

난 빨리 내려가서 쉬고 어디라도 눕던지 엉덩이 걸치고 늘어져있기라도 해야했다.

선운사 경내에 있는 찻집에서 진한 매실차를 부탁해서 한 잔 마셨다.

다음 코스가 어디냐고 묻는다.

"모양성도 좋은데 많이 걸어야돼. 모두 걸을 수 있겠어? 나는 차에 있을테니까"

평상시 내 여행스타일이라면 선운사를 중점적으로 보고 모양성을 곁다리, 그다음 살짝 올라와

내소사와 채석상을 부수적으로 들린다음 변산해수욕장 쯤에서 낙조를 보는 것일테지만 그냥 이쯤에서

여행을 멈추고 싶었다.

내가 즐겨 가자하면 모두 따라 나서겠지만 내몸이 죽겠으니 소극적, 아니 가면 힘들어 죽을거란

협박조에 모양성은 안가겠단다.

약간 미안함에 가다가 고속도로에서 가까운 바다에 들리자고 제안을 하면서도 한자락 깔기.

" 여기서 아예 밥먹구 가. 난 차에서 쉴게. 어쩜 올라가다가 먹을 데 없을지 모르니까"

이 정도면 고속도로 들어서면 다른 곳은  국물도 없다는 위협이다.

녀석 몫으로 2인분 포장을 부탁하고 모두 장어를 먹는 사이 나는 차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이번 여행은 아주 심플했다.

여행지의 목록이 심플하단거지 만족감까지 그러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선운사 하나만으로, 그냥 선운사  하나뿐이어서 더 충만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아직 해는 남아 있는데 먼길 떠나와 그 한 곳만 보는게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는

눈치들이라  시간을 재어보니 대천에서 낙조를 보고 가면 딱 알맞을 시간이다.

여러분의 행복한 시간을 위해서 아픈건 참을 수 있다, 대천으로 고고씽~~

 

바다다. 곧 해가 잠길 바다다!!

계곡물에서 발을 담글 때 혼자만 나무등걸에 앉아 있었던게 미안해서 나도 이번엔 맨발로

아주 차갑지 않은 그 바다를 걸었다.

바다는 우리 모두를 어린아이로 만들었고 그러는 사이 서서히 해가 저물어 갔다.

동트기 전 시작된 우리의 하루 행보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새삼 꽃무릇이 뭔지도 모르면서 새벽 4시 30분 나를 따라 나서준 그니들이 고마웠다.

한 달에 한번은 이렇게 회동을 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복통마저 잦아들 것 같이 기분이 좋다. 살신성인 정신이 빛을 발하는게 분명하다 ^^

"헤헤..어때~~ 나 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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